삼성을 세운 고(故) 이병철 창업회장은 전통 예술품 마니아였다. 국보 ‘가야 금관’을 비롯한 각종 한국 고미술품들을 30년 이상 수집해 우리 문화재들의 해외 밀반출을 저지했다. 삼남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도 조선 화가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구입한 1970년대 초부터 삼성가의 수장고를 채워갔다. 그렇게 부친의 1982년 호암미술관 개관을 뒷받침한 후에는 근현대 한국 예술, 서양 미술 등으로까지 장르를 넓혀 자신만의 스타일의 소장품을 모았다. 그가 생전 모은 예술품들은 2만 3000여 점으로 총 가치는 2조 원을 넘어선다. 이들 수집품은 그의 사후 2021년 국가에 기증됐다. 일명 ‘이건희 컬렉션’으로 불린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8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이건희 컬렉션 전시 기념행사에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을 초청해 환담 시간을 가졌다. 부친의 문화유산을 지렛대로 국익을 위한 민간 경제 사절 역할을 한 것이다. 이 자리에는 미국 정관계 인사와 글로벌 기업 경영진을 포함해 총 250여 명이 모였다. 미국의 통상 압박에 직면한 우리 정부와 경제계에 천금 같은 소통 기회였다. 이건희 컬렉션을 기증받은 정부는 올 하반기 서울 종로 송현동에서 상설 전시관(이건희 기증관)을 착공할 예정이다. 지방 순회 전시도 실시 중이다. 그에 따른 국민 문화 후생 향상, 관광 활성화 등 효과가 상당한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에는 금융 재벌 로버트 리먼이 생전 모은 미술품 2600여 점을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기증한 사례가 있다. 이른바 ‘리먼 컬렉션’으로 불리며 최근 국내에도 소개됐다. 이건희 컬렉션, 리먼 컬렉션과 같은 국가 기증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우리나라에는 사립박물관 형태로 대중에 소장 미술품을 공개하는 기업인과 기업들이 적지 않다. 성곡미술관,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등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주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서라도 예술인을 도와야 한다고 밝혔다. 예술계를 후원하고 소장품으로 국익에 기여하는 민간 기업과 기업인들에 대한 지원 방안까지 주문했다면 금상첨화였을 것이다.
<민병권 /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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