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집을 방문한 두 친구들과 오랜만에 그리피스팍의 나무숲으로 들어가서 걷기로 했다. 하늘을 덮은 숲길 아래로는 개울물이 흐르고 있었다. 졸졸 흐르는 물은 바위 사이로 내려오며, 웅덩이에 고이기도 하고, 물고기의 놀이터가 되어 빙빙 돌기도 한다. 오랜만에 숲속에 들어오니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과 맑은 공기에, 다른 세상에 온 것 같다. 생명의 아름다움을 느낄 때는, 그 생명 안에 설계된 삶의 수많은 모습까지도 사랑하게 된다.
우리는 그동안, 늘 일정에 쫒기며 잊고 지냈지만, 자연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인간이 이름을 붙이기 전부터, 계산하고 소유하려 들기 전부터, 조용히 그대로 있었다. 숲을 걷다보니 일상의 생각은 사라지고, 숲의 호흡으로 시간을 늘리며 걸었다. 나무는 서두르지 않고, 계절은 약속을 어기지도 않는다. 인간이 삶을 계획하고 계산하는 동안, 자연은 그저 자기의 리듬으로 살아간다.
자연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깨닫게 된다. 세상은 인간의 속도에 맞춰 모든 것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자연은 인간사회처럼, 효율을 요구하지도 않고, 성과도 묻지 않으며, 속도를 재촉하지도 않는 바로 자연 그대로, 존재하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우리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은, 더 많이 가진다는 것이 아니라, 생의 순환의 깊이를 깨닫게 되는 것임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자연과 가까워짐을 느낀다. 아침햇살의 높이가 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되고, 나무 한 그루의 그늘이 해마다 깊어지는 것을 느낀다. 자연은 변하지 않는 듯 보이지만, 우리와 함께 늙어가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와 함께 외로운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바람에 날리는 낙엽으로 전해준다.
“울지마라 /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 살아간다는 것은 /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 너를 보고 있다 //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것도 / 외로움 때문이고 // 네가 물가에 앉아있는 것도 / 외로움 때문이다 //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수선화에게> 정호승
숲속을 거닐며 인간의 몸 또한 자연의 일부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숨결은 공기 중에서 오고, 피는 물에서 비롯되며, 뼈는 결국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는 자연의 순환을 생각하게 된다. 결국 자연을 해친다는 것은 미래의 우리 자신을 조용히 훼손하는 일일 것이다.
우리는 자연의 품에 머물다 다시 떠나는 존재일 뿐이다. 그 사실을 생각하면, 우리는 자연 앞에 겸손해지고, 자연은 우리에게 조용히 문을 열어준다.
우리들은 소녀들처럼 손들을 꼭 잡고, 숙연해진 마음과 가슴으로 숲길을 걸어 나왔다. 경외하는 눈빛과 사랑으로 뒤돌아보면서, 감사하면서.
<
김인자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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