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은 침묵의 소리다. 왜냐하면 소리란 일단 밖으로 표출되고 나면 더 이상의 신비감을 느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위대한 시(詩)란 내면으로 말하는 것을 말한다. 소리는 그저 소리일 뿐이다. 아름다운 음악도 몇 번 듣고 나면 그저 그런 소리로 변하고 마는 것 처럼 음악이란 본래 내면에 간직된 여운이 있을 때 가장 아름다운 시의 감동을 안기는 법이다. 문제는 내면의 울림… 침묵의 여운이 아무리 아름다운 것이라해도 소리 없는 음악을 우리는 결코 음악이라고 부를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려는 것은 침묵이 최상의 음악이라는 뜻이 아니라 가장 절제되고 함축적인 소리가 때로는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베토벤을 듣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시적인 맛이 빠진 베토벤의 음악은 왠지 공허하다. 즉 함축적이고 간결한 울림이 빠진 베토벤의 음악은 베토벤답지 않다는 것이다. 베토벤의 음악은 가장 간결하고 함축적으로 들려올 때 긴장감과 함께 시적인 감동으로 다가온다. 따,따,따, 따!… ‘운명 교향곡’도 그렇지만 베토벤의 음악들은 명곡일수록 군더더기가 없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베토벤의 음악을 시적(함축)이긴 하지만 아름답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물론 베토벤의 음악도 로망스 F 장조, 전원 교향곡 처럼 아름다운 음악이 많이 존재하지만 베토벤을 표방하는 대표적인 음악들은 대체로 간결하고 예지에 싸인 음악들이 많다.
20세기의 지휘자들이 가장 뛰어난 교향곡으로 꼽은 베토벤의 ‘영웅 교향곡’(3번) 만해도 1악장 첫 울림 부터 이 곡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을 함축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5번 ‘운명’도 마찬가지다. 실내악 곡으로 유명한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17번 (템페스트), 21번 (발트슈타인), 23번 (열정), 대공 트리오, 라즈모프스키 현악 4중주 (7번), 첼로 소나타 (3번) 등 베토벤을 대표하는 곡들은 모두 첫 울림부터 압도적이며 그 전해오는 소리가 시적이고 함축적이다.
요즘처럼 비오는 날 축축하게 젖어오는 음악 소리는 베토벤적이 아니다. 툭, 툭, 하루 종일 유리창을 갈겨대는 소리는 낭만적일지는 몰라도 베토벤답지는 않다. 비내리는 길을 우산을 받쳐들고 쓸쓸히 홀로 걷는다고 해서 베토벤적인 소리가 들려오는 것은 아니다. 한 사내가 우산도 없이 아무도 기다림 없는 산길(빗속)을 무작정 걸어가는 모습… 어딘가 외롭고 절망이 다가올 때 베토벤의 음악은 위력을 발휘한다. 사람들이 베토벤을 좋아하는 것은 베토벤의 음악이 현대인들의 절망과 우울을 대변해 주기 때문이겠지만 그렇다고 고독한 철학자… 방랑 시인 등이 꼭 베토벤의 모습을 대변해 주는 것은 아니다. 베토벤은 분명 자신의 고뇌를 음악 속에 표출해 낸, 음악의 시인이며 철학자이기는 했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베토벤의 모든 것을 말한다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베토벤 역시 말 그대로 뮤즈… 음악으로 취하게하는 포도주를 빚는 예술가였으며 또 그 자신 음악의 본래적인 목적에서 결코 분리될 수 없었던, 아름다움을 창조해야했던 사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베토벤도 행복한 삶… 늘 아름다운 삶을 갈망했지만 결국은 가장 고뇌스러운 음악을 빚어야하는 삶… 외로움을 그린 음악가로 변모되고 말았다.
베토벤의 교향곡 8번은 베토벤의 일기장과 같은 작품이었다. 베토벤의 작품(교향곡) 중에서 가장 감정 이입이 적다. 어느정도 삶을 달관했기 때문이었을까. 1812년경 교향곡 7번과 비슷한 시기에 작곡되어 1814년 빈에서 7번 교향곡과 함께 발표되었는데 엄청난 인기를 끈 7번과는 다르게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베토벤은 8번이 평가받지 못한 것에 대해 화를 냈으며 스스로는 8번을 더욱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유쾌하면서도 단순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곡은 이상국가를 꿈꿨던 베토벤의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데, 어딘가 코스모폴리탄(얽메이지 않은 세계시민)적이라고나할까. 지겹게 억눌려 살았던 운명과의 싸움보다는 대인배적인 베토벤… 인간세상을 벗어난 자유인 베토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神이 허락한 가장 함축적이고 시적인 작품, 3악장 미뉴엣을 들어보면 신 인류… 베토벤이 품은 이상이 얼마나 아름다웠던가를… 방랑 시인의 라스트 댄스를 엿볼 수 있는 최고로 멋진 춤곡으로서 감동을 안기는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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