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학자 ‘가격 하락 시 부작용’
▶ 물가↓·기업수익↓·경기 침체
▶ 관세 불확실성 가격 못 내려
▶ 소득 올라도 체감 물가 높아

경제학자들이 물가 하락이 반드시 긍정적이지만은 않다고 지적했다. 물가 하락은 경치 침체 신호로, 자칫 경제에 치명적인 디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로이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 있다. 바로 물가 하락이다. 지난 5년간 식료품 가격은 25%나 뛰었고, 신차 평균가는 5만 달러를 넘어섰다. 에너지 요금은 치솟고, 건강보험료와 보육비도 상승 일로다. 주거비 역시 2020년 이후 임대, 매매 모두 최대 30%나 올랐다. 인플레이션은 2024년 대선의 핵심 이슈였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 첫날부터 물가를 낮추겠다고 약속했다.
■ 경제학자들 ‘가격 하락 시 더 큰 부작용’트럼프 대통령 취임 1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높은 물가는 그의 국정 지지율을 끌어내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ABC뉴스, 입소스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의 59%가 “현재의 물가 수준에 트럼프 대통령이 상당한 책임이 있다”라고 답했다.
문제는 한 번 오른 가격을 좀처럼 되돌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실업률이 급등하는 경기 침체기 같은 때가 아니면 소매업체들은 가격을 낮추지 않는다. 무디스 애널리틱스의 경제학자 매트 콜리어는 “인플레이션이 괴로운 건 사실이지만, 가격 하락은 더 바람직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라고 설명했다.
한번 오른 물가가 예외적으로 다시 내려간 경우도 있다. 조류 인플루엔자 때문에 폭등했던 계란값은 사태가 지나자 안정됐고, 국제유가 역시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공급 조절 탓에 등락이 잦은 편이다. 그러나 경제 전반에 광범위하게 퍼진 인플레이션만큼은 되돌아가기 어렵다. 2022년 중반 약 9.1%까지 치솟았던 물가 상승률이 크게 둔화했지만, 최근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연간 3% 상승을 기록했다. 코로나 팬데믹 초기와 비교하면 전체 물가는 여전히 25%나 높은 수준이다.
■ 물가 하락은 침체 신호아이러니하게도, 가격 하락은 경기 침체의 신호이자 그 자체로 침체를 촉발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프란체스코 비앙키 존스홉킨스대 경제학과장은 “최근 몇 년의 인플레이션은 임금도 함께 끌어올렸다”라며 “임금은 높은데 상품 가격만 떨어지면 기업은 직원들에게 지급할 수익을 충분히 얻지 못하게 된다”라고 현제 경제 상황의 딜레마를 설명했다. 상품 가격만 하락하면 기업이 노동자를 고용하는 비용이 높아지고, 이는 경기 침체를 일으킬 수 있다. 침체가 시작되면 가격 하락에 대한 기대가 더 커지고 경제는 모든 경제학자들이 우려하는 디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컬럼비아대 로라 펠트캠프 경영대 교수도 ‘가격 하락 기대감’만으로도 경기 침체를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소비자들이 가격이 내려갈 것이라고 믿는 순간, 구매를 미루기 때문에 수요는 급락하고 경기 침체가 거의 즉각 발생할 수 있다”라며 “가격 하락은 대체로 경제에 부정적 결과와 연관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소비자들은 낮은 물가를 기대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가격이 내려갈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시간대 소비자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대부분은 앞으로 1년간 인플레이션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 관세 불확실성에 기업들 가격 못 내려지난달 말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연 3%로 다시 소폭 올라, ‘연방준비제도’(Fed)의 목표치인 2%를 웃돌았다. 연준의 정책은 물가를 0%나 마이너스로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2% 수준으로 안정시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경제정책의 핵심인 관세는 수십 개 무역 파트너국과 수많은 품목에 광범위하게 적용돼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 차례 “관세가 소매가격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미국에서 생산되지 않는 식품을 중심으로 일상 제품 가격은 확연히 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국 11월 15일 쇠고기, 코코아, 바나나, 커피 등 여러 식품에 대한 관세를 철회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다행히 기업들은 관세 인상분을 모두 소비자에게 전가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철회하더라도 가격을 완전히 되돌릴 가능성도 현재로서는 낮다. 관세 정책이 언제 다시 뒤집힐지 모른다는 불확실성과 가격을 내리고 올리는 과정에서 고객을 잃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무디스 애널리틱스의 맷 콜리어 콜리어 경제학자는 “정부 정책이 주거비와 의료비, 두 분야에서 가격을 낮추는 효과를 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의료는 정부 개입이 큰 영역이므로 비용을 낮추는 정책을 시행할 수 있고, 주거는 토지이용, 용도규제, 주택 공급 정책을 통해 주택 건설을 늘리면 공급 확대가 자연스럽게 가격을 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소득 올라도 체감 물가는 높을 것2022년의 인플레이션 급등은 최근 역사에서 보기 드문 일이었다. 비앙키 존스홉킨스대 경영학장은 “소비자들은 아주 낮은 수준의 물가 상승에 익숙해져 있었다”라며 “연준이 ‘건전하다’고 여기는 수준보다 더 낮은 인플레이션이 수년간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리버럴 성향 단체 ‘그라운드워크 콜라보러티브’를 린지 오언스 대표는 “물가 문제가 앞으로도 몇 년간 최우선 관심사로 남을 것”이라며 “소비자들은 특정 가격에 기준을 두기 때문에, 소득이 올라 부담이 줄어도 심리적으로 적응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일부 경제학자들은 2022년 물가 급등 이전과 이후 상황을 들며 더 나쁜 상황에 대비해야 할 수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당시는 코로나 팬데믹의 충격에서 막 벗어나던 시기로, 정부는 경기 붕괴를 막기 위해 대규모 재정지출로 경제를 떠받쳤다. 대부분의 경제 전문가들은 이 막대한 현금 유입이 이후 인플레이션을 초래한 주요 요인이었다는 데 동의한다. 반면 비앙키 교수는 “미국 경제는 사상 최대폭의 인플레이션을 겪었다”라면서도 “하지만 동시에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재앙을 피할 수도 있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인플레이션이 본격적으로 치솟기 시작했을 당시 많은 경제학자들은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면 경기 침체가 불가피할 것이라 우려했다. 컬럼비아대 펠트캠프 교수는 “연준이 경기 침체를 막으면서 경제를 충분히 둔화시켜 인플레이션의 상승 속도를 멈추는 데 성공한 것은 가장 성공적인 인플레이션 안정화 사례였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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