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정대(佛頂臺)
▶ 겸재(謙齋) 정선(鄭敾) 楓嶽圖帖(풍악도첩)중, 국립중앙박물관
구름 위에 천봉만악(千峯萬嶽) 아스라이 솟아있고
아침 해의 불덩어리 불정대를 불태우나
외나무다리 밑은 깎아지른 낭떠러지
불심으로 아미타불 외우며 건너가네
열두 번 꺾인 다음 쏟아지는 십이폭포(十二瀑布)
송강(松江)의 노랫소리 골짜기에 들려온다
은하수 한굽이를 촌촌히 버혀 내어
실같이 풀어서 베같이 걸렸구나
겸재 정선의 신묘년풍악도첩(辛卯年楓嶽圖帖, 보물 제1875호)에 수록된 그림으로 그가 36세에 그린 진경산수화풍의 그림이다. 금강산 외금강에는 십이폭포(十二瀑布)라는 폭포가 있는데 폭포가 12개 있다는 뜻이 아니라 폭포수가 12번이나 방향을 꺾으면서 떨어진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불정대는 부처의 정수리라는 뜻으로 은선대(隱仙臺)와 함께 동해의 일출과 십이폭포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전망대로 유명했으며 옛날 수많은 시인, 묵객(墨客)들이 찾아간 곳이었다. 불정대의 오른 쪽은 외금강이며, 왼쪽 토산(土山)은 내금강으로서 불정대는 그 경계선에 있다.
그러나 불정대는 아무나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불정대는 기이한 암석이 첩첩이 쌓여 대(帶)를 이루고 마치 허공에 매달려 있는 듯한 곳이어서 천 길 낭떠러지를 건너는 외나무다리를 건너야만 닿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금강산에 갔던 겸재의 절친(切親) 사천 이병연은 불정대에 가지 못하고 ‘병 많은 중년이라 심력이 약해서, 지팡이 의지하고 산 중턱 되내려오네’라고 말했으니 상당한 담력이 있지 않고는 가기 힘든 곳이었다.
금강산의 절경을 보기 위해 아슬아슬한 불정대의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것은 인디애나 존스 영화 ‘최후의 성전(The Last Crusade)’에 나오는 주인공을 생각나게 한다. 영화 속의 주인공은 어두운 천길 낭떠러지를 건너야 하는데, 두려워서 주저주저하다가 ‘굳은 믿음을 가져야만 눈에 보인다’는 아버지의 말을 기억하였고, 결국 낭떠러지 위의 돌다리를 보고 건널 수 있었다. 이처럼 불정대 가는 길도 역시 깊은 불심(佛心)으로 아미타불을 외워야만 건널 용기가 나지 않았을까?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는 공자님이나 맹자님, 또는 그 어떤 고매한 철학자의 말씀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 학식과 지혜도 중요하지만 믿음은 그보다 훨씬 높은 차원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송강(松江) 정철(鄭澈, 1536-1594)이 강원도 관찰사일 때 관동팔경을 유람했는데, 십이폭포를 바라본 소회를 가사집(歌辭集)인 <관동별곡(關東別曲)>에서 다음과 같이 읊었다. (원래의 흥을 살리기 위해 원문을 소개함)
외나모 써근 다리 불뎡대(佛頂臺) 올라하니
천심절벽(千尋絶壁)을 반공(半空)에 셰여 두고
은하슈 한 구비를 촌촌히 버혀내여
실가티 플텨이셔 뵈가티 거러시니
도경(圖經) 열 두 구비, 내 보매난 여러히라.
니덕션(李謫仙, 이태백) 이제 이셔 고텨 의논하게 되면
녀산(廬山)이 여긔도곤 낫단 말 못하려니
여산(廬山)은 중국 강서성에 있는데 여산폭포(廬山瀑布)로 유명한 곳이다. 송강 정철은 금강산의 십이폭포가 여산폭포보다 더 장엄하고 아름다운 폭포라고 노래했다.
이 그림은 멀리 금강산의 일만 이천 봉을 피마준(披麻皴)으로 뾰족뾰족하게 그리고 그 사이로 열두 번 꺾어지며 장엄하게 흘러내리는 십이폭포의 역동성을 먹의 농담을 사용하여 표현했다. 또한 노송 몇 그루가 있는 불정대와 금강산 봉우리 사이를 여백으로 처리하여 신비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었으며, 사람이 걸어가는 길에 점선을 그려 넣어 이 그림을 보는 사람이 그림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독창적인 기법을 사용하였다. joseonky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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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용 교수 (메릴랜드대 화학생명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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