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를 ‘종이호랑이’라고 깎아내리면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해 영토를 되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은 자국을 침범한 러시아 무인기를 격추해야 한다는 주장도 폈다.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했던 종전 협상에 진척이 없고 러시아 무인기가 나토 회원국 국경을 잇따라 침범하자 러시아를 향해 경고 메시지를 날린 것으로 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3일 트루스소셜에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EU)의 지원에 힘입어 싸워 원래의 형태로 자국 영토를 되찾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적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가 모든 영토를 되찾을 수 있다고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더 나아가 러시아의 자존심을 긁는 발언도 내놓았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러시아가 실질적 군사 강국이라면 이기는 데 1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을 전쟁”이라고 지적하며 “러시아는 3년 반 동안 목적 없이 싸우고 있다. 이는 그들을 ‘종이호랑이(a paper tiger)’처럼 보이게 만들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트럼프 대통령의 조롱에 발끈한 크렘린궁은 “러시아는 호랑이가 아니라 곰이며 종이 곰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며 맞받아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잃었던 영토를 되찾는 것은 물론 그 이상도 가능하다는 취지의 의미심장한 말도 남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의 국가재정이 대부분 우크라이나 전쟁에 사용되고 있는 상황을 러시아 국민들이 알게 된다면 우크라이나는 원래의 형태로 자국 영토를 회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이상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의 놀라운 입장 변화”라고 평가했고 영국 가디언도 “트럼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가장 강력한 지지 성명 중 하나”라고 짚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중국 없이 (블라디미르) 푸틴의 러시아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났고 몇 가지 좋은 아이디어에 대해 논의했다. 그것이 작동하기를 희망한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뉴욕에서 열린 제80차 유엔총회를 계기로 다수의 정상회담을 가진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와 대립각을 세우는 발언을 이어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만나서는 “불행히도 (나와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관계는 (종전에) 아무 의미도 없었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는 ‘나토 국가들이 러시아 항공기가 자국 영공에 진입하면 격추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렇다”고 답했다. 최근 러시아 드론과 전투기가 폴란드와 에스토니아 등 나토 회원국 영공을 침범한 일을 꼬집은 발언으로 해석된다.

다만 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이 변했다고 단언하기는 이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이 구체적인 행동에 나설 때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톰 맬리나우스키 전 미 국무부 차관보는 “푸틴은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승리를 위해 실제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단 하나의 질문만 할 것”이라며 “미국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저 그것은 말뿐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러시아 항공기를 격추하는 나토 회원국을 지원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의에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말을 돌렸다. 또 푸틴 대통령을 아직도 믿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한 달쯤 지난 뒤 알려주겠다”고 의미심장한 답을 남겼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유엔총회 연설에서 “유엔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면서도 “내가 7개의 전쟁을 끝냈는데 유엔으로부터 전화 한 통도 받지 못했다”고 유엔을 직격했다. 또 이민·재생에너지 문제를 거론하며 유럽 국가들을 향해 “당신들의 나라는 지옥으로 가고 있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에게 주어진 15분을 훌쩍 넘긴 56분 동안 유엔과 동맹국, 국제 규범을 향해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