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다니던 초등학교는 오리도 넘는 거리에 있었다. 동네 아이들은 지각하지 않기 위해 늘 바쁜 아침을 맞이했다. 그날따라 형은 늦잠을 자고 아침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몇 숟가락을 입에 넣고 책 보따리를 등에 메었다. 형은 이미 동네 아이들은 모두 학교로 떠났고 자기가 제일 늦을 것을 알았다. 형은 울상이 되었다. “엄마! 해를 붙잡아 줘~~~” 떼를 쓰듯이 엄마를 향해 큰 소리를 지르고 길바닥에 펄썩 주저앉았다.
나는 형에게 다가가 팔을 잡고 말했다. “형, 일어나 달려가면 조금 전에 마을 떠난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 거야…” 형은 얼굴에 묻은 눈물을 소매 끝자락으로 쓱쓱 문지르고 일어났다. 그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어깨에 멘 책 보자기가 이쪽저쪽으로 왔다 갔다 하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엄마 해를 붙잡아 줘~~~”라고 외치던 형의 말은 문득문득 생각났다. 인간의 힘으로 태양을 멈추게 할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겨울이 오기 전에 태양을 좀 더 긴 시간 동안 우리 머리 위에 머물게 할 수 있다면 추위로 고생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중요한 약속 시간을 잡아 놓았는데 깜빡 잊어버리고 시간을 놓칠 위험이 있을 때 태양을 꽉 잡아매어 두면 얼마나 좋을까? 의사 선생님이 어머니의 병세를 진단하고 앞으로 길어야 석 달 정도 연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때부터 태양을 꼭 잡고 놓아주지 않으면 삼 년도 넘기고 삼십 년도 넘기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늘 그 자리를 지키는 자연도 세월을 이기지 못한다는 의미이리라. 십년까지 가지 않더라도 몇 년 만에 세상이 빠르게 바뀌는 요즘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교포가 오랜만에 고국을 방문하였다. 그가 살았던 동네를 찾아갔지만 너무나 변해 있었다. 낯선 곳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시간은 어제의 세상을 밀어내고 새 세상을 그 자리에 채운다. 만일 태양을 꼭 잡을 수 있다면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은 세상이 그대로 자리를 지킬 것이 아닐까? 그리운 고향도 그 자리를 지켜 줄 것이고 함께 놀던 친구들의 모습도 그대로 유지되지 않을까?
여호수아가 기브온 전투에서 넘어가는 태양을 붙잡아 두고 승리를 이끈 기록이 구약 성경에 나타난다. 잠시 태양이 머물렀을 때 전황은 완전히 바뀌어졌다. 그러나 그 이후 어떤 역사의 기록에도 태양을 붙잡아 둔 기록은 찾을 수 없다. 독일 학자 몰트만은 그의 신학 해석에서 시간을 정적인 틀로 인식하지 않고 미래로 나아가는 역동적인 과정으로 파악하였다. 시간은 누구도 제 자리에 묶어 둘 수는 없다. 미래를 향해 쉼 없이 나아가는 점에서 인간은 시간에 끌려가는 존재가 아니라 앞서서 미래를 열어가는 존재임을 인식하였다.
어릴 적 형이 집 마당에 펄썩 주저앉아 “엄마! 해를 붙잡아 줘~~~”라고 한 것은 등교 시간을 놓친 철부지의 생떼이기도 하지만 시간과 피할 수 없는 운명적인 싸움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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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두 서북미수필가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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