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0년대 초반 한우 한 마리의 가격은 60만~70만 원대였다. 당시 서울 소재 사립대의 연간 학비는 70만 원, 국립대는 30만 원 수준이었다. 가난한 농가는 생계 수단인 소나 논을 처분해 자녀의 대학 진학 비용을 마련해야 했다. 교육열이 뜨거운 한국에서 대학 등록금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내야 하는 타협 불가의 영역이다. 그러다 보니 대학은 ‘소의 뼈로 세운 건물’이라는 뜻의 ‘우골탑’이라는 명예롭지 못한 별명을 얻게 됐다. 2000년대 초반에는 서울 사립대 기준 매년 학비가 7%씩 뛰었고 2006년과 2007년에는 국공립대까지 10%씩 등록금을 인상하면서 ‘등골탑’이라는 원성이 쏟아졌다.
학부모와 청년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정치권에서는 ‘반값 등록금’을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고 정부도 2009년 대학들에 학비 인상 중단을 요청했다. 정부 지원에 목을 매야 하는 대학들은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2012년 교육과학기술부는 등록금을 동결한 대학에만 국가장학금 2유형을 지원하기로 했는데, 이는 소득구간 기준 상위 10%를 제외한 학생 대부분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이라 사실상 등록금 동결을 강제하는 수단이었다. 같은 해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이 서울시립대에서 ‘반값 등록금’을 시행한 것도 다른 대학들에 강한 압박으로 작용했다. 그 결과 지난해 4년제 일반대학 평균 등록금은 682만 원으로, 2009년의 676만 원과 거의 같은 수준으로 정체된 기현상을 낳았다.
그사이 물가는 32.8% 상승했는데 대학의 수입은 멈춰 있다 보니 교육 여건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 첨단 인재 육성의 전진기지여야 할 대학들이 운영비 부족으로 교수 채용과 연구시설 투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대학들은 첨단학과에서 우수한 교원을 채용할 비용은커녕 일반 인건비와 관리비 충당조차 갈수록 어려운 상황이라고 호소한다. 새해에는 재정적 한계에 도달한 대학들의 ‘학비 현실화’가 줄을 잇고 있다. 대학의 경쟁력 약화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만큼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등록금 조정이 불가피한 시점이다.
<이혜진 /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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