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선거가 두 달이 채 남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와 카멀라 해리스,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의 두 후보가 각축을 벌이고 있어 결과는 예측이 어렵다. 누구의 당선이 우리에게 유리할까. 지금쯤 지구촌 많은 나라의 기업과 정부가 자문하는 질문일 것이다. 미국 경제정책은 내년은 물론이고 최소 향후 4년 세계 경제의 향방 예측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환경요소이기 때문이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와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의 입장에서 트럼프의 당선은 재앙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것은 둘째 치고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수입품에 10% 관세를 일괄 부과하겠다는 그의 관세 공약에 대한 우려는 컸다. 그런데, 이제는 잘 모르겠다. 몇 주 전 발표된 민주당 대통령 후보 해리스의 경제정책 공약을 일람한 뒤에 생긴 심경의 변화이다.
해리스는 정책의 큰 목표를 미국 중산층 살림살이 개선에 두고 ‘기회의 경제’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그리고 세부 목표로서 생활물가 안정을 내세웠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런데 추진방안이 놀랍다. 식료품에 대해 기업이 ‘폭리가격’을 책정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 제정을 핵심 공약으로 소개하였다. 배경은 뭘까. 지난 4년 전반적인 물가상승은 미국 국민의 최대 불만 사항이다.
특히 식료품 가격은 20% 넘게 큰 폭으로 상승하면서 서민과 중산층의 장바구니 물가를 높인 주범이다. 이 현상에 대해 일부 정치인과 시민단체는 식료품 제조 및 유통 대기업의 탐욕을 원인으로 내세웠다. 이들이 폭리가격을 책정하여 과도한 이익을 추구하였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다분히 반기업 정서에 뿌리를 둔 포퓰리즘인데 이를 해리스 진영에서 수용한 것이다.
트럼프 진영에서는 즉각 사회주의식 정책이라고 비난하였고, 미국의 주요 언론도 가격통제 발상에 대체로 부정적인 논평으로 반응하고 있다. 논란이 많아 실제 법 제정까지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희망(?) 섞인 전망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 전망이 맞을지도 의문이지만 어쨌든 핵심공약이므로 해리스가 당선된다면 미국 경제정책은 가격통제를 놓고 한판의 논쟁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사실 가격통제가 미국 경제정책의 역사에서 금기어가 아니다. 오히려 신자유주의 경제철학이 득세하기 이전, 그러니까 1970년대 말까지 가격통제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미국 정부의 주요 정책수단이었다. 1960년대 중반 인플레이션이 고개를 들자, 당시 대통령이었던 린든 존슨이 꺼내 든 해법은 기업에 ‘가격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TV 가격상승 뉴스가 있으면 당시 최대 제조업체였던 RCA 사장에게 전화해 가격인상 자제를 요구하고, 달걀값이 오르자 달걀의 과다 섭취가 건강에 가져올 수 있는 해악을 소관부처 장관에게 발표하도록 지시하는 식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1970년 밀턴 프리드먼이 그 유명한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윤 극대화”라고 일갈하게 된 시대적 배경이다. 요즘 ESG경영이 기업경영 패러다임으로 부상하면서 프리드먼의 칼럼은 환경 등 사회적 가치에 무관심한 경영철학을 대변한 것으로 곡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시대적 소임은 과도한 정부의 시장개입을 경고하는 데 있었다.
이제 한편에는 일괄 관세로 대표되는 반세계화의 정책철학이, 다른 편에는 가격통제로 대표되는 반기업 정서의 정책철학이 버티고 있는 형국이다. 둘 다 가고 싶지 않은 길인데, 어느 쪽이든 곧 현실이 될 것이니 난감하다. 해리스가 당선되어 트럼프를 피한다면, 그렇지만 가격통제의 경제철학을 피하지 못한다면, 종국에는 또 다른 프리드먼의 재림을 기다려야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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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석 중앙대 경영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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