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대만 TSMC, 미국 인텔 등 세계적 반도체 회사들이 제품을 먼저 공급해달라고 읍소하는 곳이 있다. 바로 반도체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만드는 네덜란드 ASML이다. 이 장비가 있어야 첨단 반도체 웨이퍼에 빛을 쏴 미세하고 복잡한 전자회로 패턴을 새길 수 있어서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이곳에 지속적으로 공을 들이며 차세대 노광 장비의 입도선매를 추진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ASML에 핵심 인재를 공급하는 곳은 바로 에인트호벤공대다. ASML 본사에서 8km가량 떨어진 이 대학은 정부는 물론 첨단 기업들의 지원을 받아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개발(R&D)과 창업에 적극 도전하고 있다. 이 대학에는 ASML 노광 장비를 연구용으로 쓰는 실험실도 있다. 이 대학 출신들은 약 130년 역사의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인 필립스는 물론 자동차 전자장치 반도체 세계 1위인 NXP 등 에인트호벤 지역의 혁신 기업들에 고루 포진해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처럼 에인트호벤공대를 중심으로 혁신 생태계가 갖춰지면서 자연스레 외국의 우수 인재들도 이 도시에 몰려든다.
그런데 에인트호벤공대가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전쟁에 끼어서 난처한 상황을 맞고 있다. 로베르트 얀 스미츠 에인트호벤공대 총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네덜란드 주재 미국 대사가 ‘중국 학생들이 많다’고 우려를 표했다”고 털어놓았다. 미국 정부가 ASML 장비가 중국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는 상황에서 중국 학생을 통한 기술 유출 가능성에 주의하라는 뜻이다. 현재 에인트호벤공대생의 약 25%가 외국인인데 중국 학생이 적지 않게 포함된 것으로 추산된다. 네덜란드 정부도 지난해 중국 화웨이 스마트폰에 쓰인 7나노 반도체가 ASML 기술로 제작됐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중국 학생에 대한 심사제 도입을 예고했다.
글로벌 기술 패권 전쟁에서 반도체 등 우리 첨단산업을 키우려면 ‘세상에 없는 기술’을 개발하면서 고급 인재 양성과 인재·기술 유출 방지에 적극 나서야 한다. 해외 인재들이 몰려들 수 있도록 혁신 생태계를 꽃피우되 경제안보를 고려해 기술 유출이 없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고광본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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