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정주치의 오창현 박사
▶ 투병 아내 편안하게 눈감자
▶여생을 말기환자 돕는 사역
▶90세에 메디컬 디렉터 맡아
’오렌지 호스피스‘에서 메디컬 디렉터로 일하는 오창현 박사에게 호스피스 케어는 의사로서 마지막 사명이자 크리스천으로서 소중한 사역이다.
1963년 결혼한 아내와는 55년을 해로했다. 하지만 아내는 신장암을 오래 앓았고, 파킨슨병까지 도져 힘든 투병생활을 견뎌내야 했다. 아내에게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다. 서둘러 호스피스 케어를 신청했다. 호스피스 케어란 악성 질환에 걸려 말기 상태에 있는 환자와 가족이 남겨진 시간의 의미를 발견하고, 그 시간을 충실히 살아가도록 배려하는 광범위한 치료를 의미한다. 환자들이 단순히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품위있게 마무리하도록 도와주는 것도 중요한 임무다.
아내는 라구나우즈 자택에서 호스피스 케어를 받으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서서히 털어 냈다. 2018년 어느 주일. 가정 예배를 마치고 나서 아내는 아주 편안하고 평화로운 모습으로 세상과 작별했다. 아내의 죽음은 은퇴한 가정주치의 오창현 박사(90)를 호스피스 케어 기관의 의료 책임자(medical director)로 이끌었다.
1934년에 전남에서 태어난 오 박사는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해방 후 제헌 국회의원을 지낸 오석주 목사의 손자다. 미션스쿨인 배재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1955년 언더우드 선교사가 세운 연세대 세브란스 의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6.25 한국전쟁으로 가세가 심하게 기울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어렵게 의대를 마쳤습니다.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육군 군의관으로 의사생활을 시작했죠.”
군의관 재직 중이었던 그에게 1963년 콜로라도주 덴버에 있는 미 육군병원에서 1년간의 연수기회가 주어졌다. 월남전에도 참전한 그는 1975년 도미, 같은해 12월 미국 의사면허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오하이오와 매릴랜드에서 가정주치의로 일하다가 2003년 은퇴했다. 날씨 좋은 남가주로 이주해서도 파트타임으로 의사 생활을 이어갔다.
오 박사 부부 사이에 태어난 외동딸은 신장암에 걸린 어머니를 간호하다 무리했던 탓인지 2015년 자신도 같은 병에 걸려 한 달만에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이자 의사로서 무력감을 느꼈던 순간이었다. 3년 후 아내도 숨을 거뒀다.
“아내가 죽기 전날 밤 둘이서 손을 꼭잡고 잠이 들었었는데, 아내는 다음날 아주 편안한 얼굴로 저와의 ‘아름다운 동행’를 마무리했어요. 두렵고 원망스럽기만 했던 죽음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죠.”
아내와 사별 후 라구나우즈 이웃인 채숙영씨를 통해 한 호스피스 서비스 기관과 인연을 맺었다. 2022년 막 문을 연 ‘오렌지 호스피스’에서 석달동안 교육을 받았고, 같은 해 7월 메디컬 어드바이저를 맡았다가 11월부터 약 처방을 비롯해 모든 호스피스 환자들에 대한 의료 권한을 갖고 있는 메디컬 디렉터가 됐다.
오 박사는 1년 반 남짓한 기간동안 117명의 말기 환자들을 보살폈다. 얼마 전에는 의대 동기였던 전직 정신과 의사가 그에게 자신의 호스피스 케어를 부탁했다. 그 친구는 오 박사의 자택에서 두 달간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고 큰 고통없이 숨을 거뒀다. 오 박사에 따르면 미국인과 한인들 사이에 죽음을 대하는 자세나 태도에 큰 차이가 있다.
“미국인 말기 환자들과 가족들은 대체로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편입니다. 환자가 ‘That’s enough. I‘m ready’라고 말하면 자신이 갈 때가 됐다는 의미죠. 가족들은 환자의 손을 잡고 ‘이제 아무 걱정말고 편하게 가시라’고 마지막 인사를 나눕니다.”
반면 한인들의 경우 죽음에 대한 공포가 큰 편이다. 종교가 없는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가족들 역시 환자의 죽음을 인정하기 힘들어 한다. 이런 순간에 말기 환자들을 케어하는 전문 간호사나 자원봉사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오 박사는 3개월에 한번씩 의무적으로 말기 환자들을 방문해 건강상태를 점검해야 한다.
하지만 환자나 가족들의 요청이 있으면 언제든지 달려가 환자들을 돌본다. 아무래도 죽음 직전의 환자들을 상대하다 보니 느끼는 스트레스도 적지 않다. 오 박사는 동료들과 서로의 경험을 나누면서 어려움을 풀어 나간다. ‘믿음의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나 평생 교회를 섬긴 그의 종교도 어지러운 마음을 달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제게 호스피스 의료 책임자 일은 사명이자 사역입니다. 도움이 절실한 말기 환자들을 돌보다가 생을 마감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이 ‘착하고 충성된 종아 그동안 수고가 많았다’고 꼭 안아주신다면 더 바랄 게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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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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