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흥진의 영화이야기 - ‘패신저’(The Passenger·1975) ★★★★½(5개 만점)

데이빗과 이름 없는 여 건축학도는 둘 다 여객으로서 만나 동행한다.
인간의 권태와 소외의식 그리고 고독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이탈리아의 명장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실존주의적 스릴러다. 인간 조건과 정치적 상황 속에 갇힌 개인에 관한 고도로 지적이요 통렬한 철학적 서스펜스 영화라고 하겠는데 어떤 뚜렷한 대답 없이 끝난다.
내용을 두고 논란과 토론이 있을법한 영화로 나라는 조건과 나의 삶이라는 주어진 여건을 탈출하려는 한 개인의 무모한 노력을 염세적이자 세기말적으로 그렸다. 눈부시게 멋있는 스타일을 지녔는데 특히 아프리카의 황량한 정경을 멀리서 찍은 촬영이 불타는 듯이 아름답다. 이 영화는 한 마디로 말해 우리에겐 나아갈 곳이 없다는 명제에 관한 감독의 철학적 명상이라고 하겠다.
데이빗 로크(잭 니콜슨)는 북아프리카의 종족분쟁을 취재하기 위해 현지에 파견된 기자. 그가 몰던 지프의 바퀴가 모래 속에 빠져 오도 가도 못하게 되면서(인간 조건의 상징) 데이빗은 걷기 시작한다. 데이빗이 묵은 한 허름한 호텔에서 데이빗은 자기와 비슷한 용모와 체격을 지닌 남자를 만난다.
그런데 이 남자가 급사하면서 데이빗은 남자의 여권 사진과 자기 것을 바꾸고 남자의 소지품을 챙긴 뒤 그에게 자기 옷을 입혀 자기 방 침대에 누인다. 데이빗은 이제 타인이 된 것이다. 데이빗은 남자의 수첩에 적힌 스케줄을 따라 여행을 시작하는데 알고 보니 이 남자는 무기 밀매상. 데이빗은 테러리스들을 만나 돈까지 받고 죽은 남자 노릇을 한다.
한편 데이빗의 집에서는 그의 아내가 남편의 행방을 찾아 나선다. 데이빗은 여행 중 건축학도라는 여자(마리아 슈나이더)를 만나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가우디의 건축도 감상하면서 대화와 함께 몸도 나눈다. 여자가 어떤 과거를 지녔는지 밝혀지지 않는데 이 여자는 마치 자기 삶이라곤 없는 사람과도 같다. 데이빗의 아내와 친구 그리고 경찰이 추적하는 가운데 데이빗은 스페인 시골의 한 여인숙에 묵는다. 그리고 열린 창문을 통해 세단을 탄 남자들이 여인숙에 도착하는 장면이 보인다. 조금 있다 총성이 들린다. 니콜슨의 야성적 지성미가 강렬한데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에 나온 슈나이더의 모습도 수수께끼처럼 자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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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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