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중 국민당 vs 친미 민진당 대결 양상
▶ 양안 관계와 미중 패권경쟁에도 영향 미칠 듯
1992년 11월 중국과 대만은 반관반민 성격의 중국해협양안관계협회(이하 해협회)와 대만해협교류기금회(이하 해기회)를 내세워 이른바 '92공식(九二共識)'에 합의했다.
합의 내용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하되(一個中國), 그 표현은 양안 각자의 편의대로 한다(各自表述)"였고, 이를 줄여서 '일중각표(一中各表)'라 불렀다.
1993년 4월 싱가포르에서 중국 해협회의 왕다오한과 대만 해기회의 구전푸 이사장 사이의 첫 양안(중국과 대만) 회담이 개최됐다.
이후 22년이 지난 2015년 11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 대만 총통 사이에 첫 양안 정상회담이 열렸을 때도 양측은 92공식이 양안 관계의 근간임을 확인했다.
하지만 내년 1월 13일 열리는 대만 총통선거에서 92공식은 핵심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대만 내 양대 정치세력인 국민당과 민주진보당, 그리고 다른 정파들이 이 공식을 놓고 상이한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대만 국민들의 일반적 기류는 92공식을 지지하지 않는 쪽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4월18일 대만 영자지 타이완뉴스에 따르면 대만여론재단(TPOF)이 대만 성인 남녀 1천여명을 대상으로 92공식의 핵심 개념에 대한 동의 여부를 물은 결과 응답자의 67%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반면 92공식에 동의한다는 응답자의 비율은 22.5%에 불과했다.
그러나 중국은 대만 총통선거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대만 독립을 추구하는 민진당이 아닌 국민당으로의 정권교체를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의 대만 정책은 왕후닝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자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이 이끌고 있다.
시진핑 주석의 '중국몽'의 설계자로 유명한 왕 주석은 대만에 대해 '일국양제(一國兩制·1국가 2체제)'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왕 주석은 지난 2월 10일 중국을 방문한 샤리옌 국민당 부주석을 만나 "대만 동포들과 단결해 조국통일과 중화민족 부흥의 역사적 위업을 함께 이루자"고 말했다. 전통적으로 한 뿌리(중화민족)인 중국과 대만이 92공식을 더 공고히 하면서 '신(新) 국공합작'을 하자는 제안이었다.
대만 국민의 92공식 지지 여론이 강하지 않은 것을 의식하는 국민당이지만,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통해 대만 경제를 부흥시키고 전쟁의 공포를 불식시키면 대만인들의 표심을 얻을 수 있다는 선거전략을 펴고 있다.
내년 대선에 나설 국민당 후보는 허우여우이 신베이시장으로 국민당 내에서 그나마 친중 색채가 약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지만, 국민당은 전통적으로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차이잉원 총통이 이끄는 대만 민진당은 철저하게 친미 행보를 보이며 대륙과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차이 총통은 지난 3월 미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대만의 가치와 생활 방식도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차이 총통은 2016년 집권 이후 92공식을 거부해왔다.
이번 선거에서 현직 차이 총통은 3선 제한 규정으로 출마하지 못한다. 또 작년 11월 지방선거 참패로 민진당 주석직을 사임했다.
보궐선거를 통해 민진당 주석직에 오른 라이칭더 부총통이 민진당 대선후보로 나섰다. 라이 후보는 대만 독립을 강하게 주장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당연히 92공식에도 반대한다.
내년 대선에는 양당 후보 외에 대만민중당의 커원저 후보도 나섰는데, 그는 중도 성향의 '제3지대' 정치인이다.
'하나의 중국'을 실현하기 위해 대만 침공 가능성까지 제기될 정도로 강한 의지를 과시하는 중국은 어떤 형태로든 선거전에 개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미국을 자극하는 요소이다. 차이 총통의 미국 본토 방문을 허용한 미국은 민진당 후보의 당선을 통해 대만과 미국의 관계가 더욱 견고해지기를 바라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의회 지도자들은 민주·공화당을 가리지 않고 친미 성향의 민진당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지난 4월 5일 캘리포니아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도서관에서 차이 총통과 만난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은 "우리가 미국과 대만 국민을 위해 경제적 자유와 민주주의, 평화, 안정을 증진할 방안을 계속해서 찾을 것이라는 데 낙관적이다"라고 말했다.
사실상 대만 총통 선거를 놓고 미국과 중국이 대리전을 치르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이에 따라 내년 대만 총통 선거는 양안 관계뿐 아니라 동북아시아, 나아가 미중 패권경쟁에도 영향을 미칠 중요 이벤트로 평가돼 향후 전개가 주목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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