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 아래서 평상에 앉아
부채질을 하며
말복 더위를 식히고 있는데
달려오던 빨간 자동차가 끽 멈춰섰다
운전석 차창이 쏙 열리더니
마흔 살 될까 말까 한 아줌마가
고개도 까딱하지 않고
- 할아버지! 진소천 가는 길이 어디죠?
꼬나보듯 묻는다
부채를 탁 접으며 나는 말했다
- 쭉 내려가면 돼요, 할머니!
내 말을 듣고는
앗, 뜨거! 놀란 듯
자동차가 달아났다
우리나라에는
단군할아버지 말고는
‘할아버지’라고 부를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유관순 누나 생각하면
나는 어린이집에도 아직 못 간
앱솔루트 분유 먹는
절대적인 갓난애야!
‘할아버지’라니?
고얀 년 같으니라구!
오탁번 ‘할아버지’
하하하! 그 운전자, 잘못하셨네. 고작 팔순 바라보는 시인을 단군할아버지와 같은 반열로 부르시다니. ‘대한독립만세’ 부르다 열여덟 꽃다운 나이로 순국하신 유관순 누나. 독립운동만 하신 게 아니라 후손들 모두를 ‘절대적 갓난애’로 만드는 청춘운동까지 하셨네. 개구쟁이 같은 만년 소년 오 시인님, 용설란은 늙지 않고 생애의 마지막에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죽는다지요. 오는 말 고와야 가는 말 곱다지만 따님 뻘인데 ‘마흔 살 할머니’는 너무 하셨어요. 반칠환 [시인]
<오탁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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