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가 쏟아지던 지난 4일, 외로운 죽음들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쓸쓸하고 이상한, 그러나 감동적인 장례식이 열렸다. LA카운티가 2016년 무연고 사망자 1,457명을 보일하이츠 공동묘지에 합장한 이날 장례식엔 약 200명이 참석했다.
빗속의 트래픽을 뚫고, 바쁜 일상을 접어둔 채 참석한 이들은 얼굴도 이름도 알지 못하지만 고단하게 살다 쓸쓸하게 죽어간 고인들의 삶을 기억하는 ‘증인’이 되어준 것이다.
다양한 민족들이 모여 사는 LA 답게 장례식은 여러 언어의 다종교 의식으로 치러졌다. 가톨릭 신부의 집례로, 아메리칸 원주민이 인디언 노래를 부르며 세이지 향초다발을 태워 그들이 묻힐 땅을 축복했고, 유대교 랍비가 모든 영혼에게 안식을 주는 시편 23편을 영어와 히브리어로 암송했으며, 개신교 목사의 영어 주기도문이 스패니시와 타갈로그어로 반복되었고, 불경소리와 스트릿 심포니 챔버 단원들의 찬송가가 망자들을 위로했다.
의식은 엘살바도르 내전 때 사라진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해 시작되었다는 ‘부름과 화답의 기도’로 마무리되었다. 목사가 무연고 사망자들을 한 그룹씩 - 한명 한명의 아이들, 틴에이저들, 성인들, 집에서 멀리 떠나온 이민자들, 집이 없는 사람들, 폭력과 질병과 학대에 시달렸던 사람들, 그리고 기쁨을 느끼고 춤추며 사랑하고 이 생을 살았던 모든 사람들 -을 호명할 때마다 참석자들은 점호에 응하듯, “프레젠테(여기요)”라고 답했다. “커뮤니티로서의 우리가 무연고자인 그들의 연고가 되어주는 일”이라고 목사는 설명했다.
1896년부터 무연고 사망자들의 장례식을 주관해온 LA카운티는 현재 무연고 사망자가 생길 경우 화장한 후 가족들의 연락을 기다리며 유골을 3년간 보관했다가 매년 12월 첫 수요일에 합동장례식을 치르고 매장한다. 하나의 묘지에 함께 묻히는 합장이며 개개인의 이름이 적힌 묘비는 없다. 하나의 묘비에 ‘2016’ 등 사망년도가 새겨질 뿐이다.
무연고자로 묻히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가까운 친척이 아예 없거나, 약물중독과 이혼 등 여러 불화로 가족과 연락이 끊긴 사람들, 본국의 가족들이 올 수 없는 처지의 이민자들…그리고 가족을 찾았어도 장례 치를 능력이 없어 시신인수를 거부 혹은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해까진 카운티 웹사이트에 2012년부터의 무연고 사망자 명단이 공개되었는데 금년엔 2016년 명단이 올라오지 않았다. 지난해 합동장례식을 치른 2015년 명단을 보면 100세 넘는 노인에서부터 태어난 날 죽은 아기들까지, 무연고 사망에도 나이가 따로 없다.
언뜻 훑어본 1,400여명 명단엔 한인들의 이름도 10명이 넘는 듯하다. 1946년생 남성 최모씨, 1970년생 여성 표모씨, 1929년생 남성 박모씨 … 그중엔 각각 ‘코리안’으로 분류된 3명도 포함되었다. 1928년생 남성과 1934년생 여성 그리고 1960년생 남성, 노부모와 중년의 아들로 추정되는 마씨 3명은 2015년 1월31일 사망으로 기록되어 있다. 무슨 사연으로 같은 날 세상을 떠났는지, 더구나 ‘우리 모두처럼 웃고, 사랑하고, 울며’ 한인사회 안팎에서 함께 살았을 이들이 왜 아무도 찾지 않는 쓸쓸한 마지막 길을 갔는지는 알 길이 없다.
몇 년간 이 합동장례식에 참석해온 칼스테이트 사회학과 스티븐 티머먼스 교수는 무연고 장례식이 “망자들만이 아니라 산자들을 위한 의식”이라고 말한다. 외로운 죽음들을 배웅하며 자신의 삶과 죽음, 가족과 이웃에 대해 돌아볼 기회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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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길은 험했 드라도 가는 길 곧바로 뒤 돌아보지말고 가셔서 맘 놓고 편안하게 잘 지내길 간절히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