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가주 최대 뮤지엄인 게티 센터가 산불의 위험에 노출돼 많이들 놀라고 걱정했던 한 주였다. 지금도 ‘게티 파이어’는 계속되고 있지만 뮤지엄에는 아무런 피해가 없다고 하니 다행이다.
그런데 12만5,000여 점의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게티 센터는 재난이 닥쳤을 때 아트 콜렉션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완벽한 자체 보호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J. 폴 게티 재단의 공보담당 부회장 리사 라핀에 의하면 28일 새벽 2시 산불 발화를 인지한 순간부터 최첨단 방재 시스템이 작동해 자동으로 2중 철문이 닫히고 모든 갤러리는 외부공기가 들어올 수 없도록 봉인됐다. 산불 연기가 스며들어 미술품이 훼손될 것을 막는 장치다.
리처드 마이어 설계로 1997년 완공된 게티 센터는 건축물 외부가 내열 소재인 규화 화강암과 금속재로 덮여있고, 내부는 강화 콘크리트 벽과 자동 방화문이 이중 삼중으로 설치돼있어 불길이 갤러리로 들어갈 여지를 막아준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숲과 정원은 건물에서 가까운 곳일수록 수분함량이 많은 식물을 심어놓았고 덤불은 정기적으로 쳐내며 관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100만 갤런의 예비 방화수 탱크를 갖고 있어서 비상시에 사용할 수 있다.
게티만큼 철저하지는 않아도 세계의 주요 박물관들은 산불 홍수 지진 등의 자연재난과 전쟁 및 약탈에도 대비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렌조 피아노 설계로 2014년 새로 지은 뉴욕의 위트니 뮤지엄 건물은 홍수에 대비하여 미 해군 구축함에 쓰이는 재질로 만든 1만5,500파운드의 방수문을 장착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중소형 미술관들은 건물과 소장품 보호 장치도 미비하고, 비상 시 대처 매뉴얼도 갖추지 못한 곳이 많다. 2017년 12월 워싱턴 DC의 스미소니안 뮤지엄은 전 세계의 뮤지엄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일주일 동안 HEART(Heritage Emergency and Response Training)라는 비상대처훈련을 실시했다. 이들은 가상의 태풍이 왔다는 설정 하에 한 시간 내로 세라믹, 드로잉 액자, 대형 깃발 등 다양한 재질의 미술품을 적절하고 신속하게 포장해서 계단과 좁은 터널을 지나 밖으로 들고나가 다른 건물로 옮기는 훈련을 받았다.
HEART는 스미소니안의 문화재 구출계획 프로그램으로, 재난이나 내전으로 문화재가 위험에 처한 지역에 전문가들을 파견하기도 한다. 이라크 전쟁 후 약탈당한 박물관 복구나 아이티 지진으로 무너진 성당의 벽화 복원작업을 주도했고, 근년에는 내전 중인 시리아와 지진 피해를 입은 네팔, 푸에르토리코 등지에서 일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 수준일까? 국립중앙박물관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세계에서도 손꼽힐 만큼 훌륭한 안전시설을 갖추고 있다. 38만여점의 문화재를 물질별(서화, 피모직물, 철기, 금속, 목제, 석제, 토제, 도자기 등)로 구분하여 온습도 환경을 달리하는 22개의 수장고를 운영하고 있다. 모든 수장고는 홍수, 지진 등의 자연재해와 정전, 화재 등의 재해에도 문화재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최첨단 자동화재 탐지 및 소화설비를 갖추고 있다고 한다. 대정전이 와도 1개월 정도는 항온·항습이 유지되고, 전쟁에 대비한 특별 대책도 마련돼 있다니 고국의 전통문화재에 대한 걱정은 내려놓아도 될 거 같다.
지난 28일 바람에 부러진 나뭇가지가 전선에 떨어지면서 발화한 ‘게티 파이어’는 목요일 현재 745에이커를 태우고 12개 주택이 전소됐으며 진화율은 아직도 30%에 지나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시미 밸리의 레이건 도서관도 한때 위험에 처하는 등 샌타 애나 강풍으로 남가주와 북가주 전역이 산불 비상이다. 산불재난이 연례행사로 굳어지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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