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민숙 ‘무제’
옛날 밥상머리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이 있었고
어머니 아버지 얼굴과
형과 동생과 누나의 얼굴이 맛있게 놓여 있었습니다
가끔 이웃집 아저씨와 아주머니
먼 친척들이 와서
밥상머리에 간식처럼 앉아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외지에 나가 사는
고모와 삼촌이 외식처럼 앉아 있기도 했습니다
이런 얼굴들이 풀잎 반찬과 잘 어울렸습니다
그러나 지금 새벽 밥상머리에는
고기반찬이 가득한 늦은 저녁 밥상머리에는
아들도 딸도 아내도 없습니다
모두 밥을 사료처럼 퍼넣고
직장으로 학교로 동창회로 나간 것입니다
밥상머리에 얼굴 반찬이 없으니
인생에 재미라는 영양가가 없습니다
공광규 (1960- ) ‘얼굴 반찬‘
요즘은 가족들이 모여 앉아 밥을 먹는 때는 명절이 아니면 외식 할 때뿐인 것도 같다. 각자 스케줄이 바쁘고 좋아하는 것도 다르고 밥 먹는 시간도 다르다. 이웃집 아저씨 아주머니 고모 삼촌이 함께 앉아 나누던 밥상은 소위 말하는 고대사적 풍경이다. 식구가 적은 우리 집도 그렇다. 나는 주로 커다란 접시에 이것저것 담아서 티비를 보거나, 창문 앞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거나 하면서 밥을 먹는다. 재미라는 영양가는 없다. 하지만 ‘희한한 세상이야’ 하고 탄식을 희극화할 재미는 있다. 얼굴 반찬 없이 먹는 밥에 벌써 익숙해 버린 것인가? 그럼 걱정할 일인가? 잠시 생각에 잠겨본다. 현대인은 점점 걱정해서 되지 않을 일은 걱정하지 않는다. 그것도 참 희안한 일이다.
임혜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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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광규 (19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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