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사한 ‘유적’
환상과 자폐에서 깨어날 때마다 아파트만 무수히 태어났다.
우리들은 무성한 아파트를 반성했지만 반성 뿐인 결론에 도달하곤 했다.
어떤 결론은 보기에도 민망했고 입 속에서도 서걱거렸다.
저녁이 되어 사람의 그림자가 발등에 수북이 떨어지자,
우리들은 우리 속의 쓸쓸함을 꺼내 천천히 쓰다듬기 시작했다
태양이 식자, 어떤 청춘들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떠돌았고 우리들은 골짜기의 그림자처럼 두꺼워졌다. 그런 쓸쓸함이 아직도 신비로웠다.
바람은 언제 어디서나 나타났지만 주위를 환기시키지 못했고 풀잎들을 일으켜 세우지도 못했다.
거리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은 이름을 주고받고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 서로 다치지 않게 거래를 이어가기도 했다.
그러한 거래 끝에서도 생을 뚜렷하게 뒤척이는 영혼을, 시인들은 검은 모자를 눌러 쓰듯 자꾸 눌러썼지만 세상의 절반은 영혼의 범람을 알지 못하거나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밤이 되어 측백나무가 제 키를 껴안고 울 때, 어떤 이는 단순하게 흙으로 돌아갔다. 또 다른 이는 삶과 죽음이 하나인 세계로 들어갔지만 남은 자들은 소수자에 불과했다.
뱀처럼 차가운 달이 뜰 때면 도시 외곽을 에둘러 흐르는 냇물이 움직였다. 그 물 꼬리를 바라보면 천천히 소름이 돋았다.
곳곳에 기도가 넘쳐흘렀지만, 어떤 불신은 막무가내 손을 뻗쳐와 소름이 멈추지 않았다.
성을 바꿔도 또 다른 나로부터 오늘을 골몰했고 흩날려 귀환하지 않는 꽃씨처럼 아릿한 방식으로 아이들은 줄어들었다. (후략)
이재연(시집‘쓸쓸함이 아직도 신비로웠다’에서)
쉬르 리얼리즘적 이미지가 군락처럼 모여있다. 서로 섞여 부유하는 생의 면모들을 초현실적으로 믹스하면서 시인은 불안과 아픔 위로 신비라는 실낱같은 희망의 빛을 내리고 있다. 태양이 식은 세상의 어둔 쪽에서 아직도 반짝이는 신비라니, 그것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신비는 몰입과 집착에서 깨어날 때 태어난다. 거리가 있어야 신비도 세상 만물도 숨을 쉰다. 자폐도 좌절도 우울도 숨쉴 거리에 서면 생명을 살리는 힘이 된다. 사랑도 삶도 죽음도 사색도 인식도 모두 그렇다. 임혜신 <시인>
<
이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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