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봇과 인공지능 일자리 뺏아 소수 고학력 전문인력만 필요 나머지는 단순·일용직 내몰려
▶ 소득양극화 갈수록 골 깊어져 일자리, 양보다 질이 문제 직업훈련·재교육 기회 드물어
경기가 호황을 누린다고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실감을 못하겠다는 목소리도 이어진다. 정점을 찍은 경기가 내년부터는 내리막길로 접어들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측도 잇따르고 있다. 호황이든 불황이든 돈 잘 버는 사람 따로 있고 돈 못 버는 사람은 여전히 허덕인다. 직종 별로 소득의 차이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해도 첨단기술이 취업 현장을 둘로 쪼개고 있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수입의 양극화 현상은 빠르게 심화됐고 중산층의 붕괴 현상도 심각한 수준이다. 이런 가운데 인력 시장의 양극화는 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디지털 혁명의 시대에 첨단 기술의 발전은 직장인 개인의 수입 격차를 급속하게 벌리고 있다.
급변하는 신기술의 파도를 타는데 성공한 기업인이나 직장인은 고소득의 혜택을 누리고 있지만, 나머지 대다수는 수입이 정체되거나 오히려 줄어드는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에 걸맞는 고등교육을 받은 소수가 치솟는 연봉을 즐기는 반면 저임금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은 돌파구를 찾을 기회조차 잡기 힘든 현실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이런 현상을 놓고 ‘첨단기술이 미국의 인력시장을 두 개로 갈라놓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첨단 산업의 새로운 메카로 떠오르는 애리조나주 피닉스 지역을 집중 조명했다. 뉴욕타임스는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첨단기술의 야망이 마구 뻗쳐나가는 사막의 도시를 뒤덮고 있다”고 묘사했다.
이곳에는 인텔이 70억달러를 들여 최신 반도체 공장을 넓히고 있고 테이저건을 생산하는 액슨도 급증하는 수요에 대처하기 위해 실리콘밸리의 인재들을 닥치는대로 끌어들이고 있다. 이 뿐만 아니다. 드론에서 블록체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타트업 기업들이 대거 이 지역으로 몰려들고 있다.
인근에 위치한 애리조나주립대학교는 훌륭한 엔지니어 공급원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게다가 지방정부는 세금 인센티브를 기업에게 제공하고 각종 규제를 지속적으로 완화하면서 첨단 기업들을 유치하고 있다.
피닉스 분명 첨단 산업의 최일선에 뛰어들어 기업들을 끌어들이고 키우고 있다. 하지만 피닉스 지역도 전국적으로 골치를 앓고 있는 구조적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비록 첨단 하이텍 비즈니스가 한참 광을 내고 있다고는 하지만 새로 창출되는 일자리의 대다수는 일용직 서비스 업종에 집중되고 있다. 종사자 수입 수준이 그만그만 한 헬스케어, 숙박업 소비스, 소매업, 청소를 포함한 빌딩관리 서비스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상황이다.
로봇과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거 차지하고 사람들은 일에서 해방돼 손을 놓고 산다는 게 실리콘밸리의 꿈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 사람들은 아직 등장도 하지 않은 복지 프로그램만 바라봐야 할 처지다. 빼앗긴 일자리를 대신해 줄 대안은 아직 논의도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새로운 자동화 물결은 직업의 미래를 바닥부터 바꾸고 있다. 학사 학위가 없는 근로자들은 제조업이나 하이텍 서비스 등의 산업 현장에서 대거 쫒겨나고 있다. 이들은 회생이나 반전의 기회도 상실한채 저임금 노동시장으로 내몰리는 중이다.
미국의 인력 시장을 로봇과 인공지능을 앞세운 자동화 물결이 양분시키고 있는 것이다. 인텔이나 보잉같은 대기업에 취직한 소수의 고학력 전문 인력은 높은 연봉을 받으면서 ‘조그만 섬’에 안주하고 있다. 이런 기업들은 직원 한 명당 수십 만 달러 이상의 생산성을 올리고 있다.
이런 ‘조그만 섬’은 저학력 근로자라는 거대한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고독한 섬같은 존재이다. 대다수 근로자는 호텔, 레스토랑, 양로센터 처럼 직원 일인당 매출이 상대적으로 아주 낮은 직장에 목을 매달고 있다. 이런 직종은 근본적으로 인컴이 낮을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첨단기술이 모두를 잘 살 수 있게 한다’는 굳센 믿음을 가진 경제학자들조차 이제 인력시장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 우려하기 시작했다.
MIT대학교와 보스톤대학교 공동연구팀이 지난 11월 발표한 최신 연구 결과에 따르면 로봇이 등장하면서 근로 인력의 수요는 계속 감소하고 있으며 임금도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고 생산성이 급격히 향상되는 것도 아니다. 생산성 상승곡선은 로봇의 투입에도 불구하고 아주 느린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경제학자들 중에는 로봇이 노동시장을 접수하면서 앞으로 30년 이상 근로자 수입이 증가하기는커녕 전국적으로 감소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학자들도 나올 지경이다.
로봇 등으로 인한 자동화 첨단기술로 인해 근로자들이 저임금 일자리로 쫒겨나가는 가장 극심한 경제적 불합리가 깊어질 수 있다는 경고다. 정보 하이텍 , 로봇, 인공지능 등 첨단 기술이 발전하고 확산됨에도 불구하고 결국 전체적인 생산성 성장은 답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MIT대학교의 대런 에이스모글루 경제학 교수는 “이런 요소들을 우려하지 않고 첨단 기술이 가는대로 따라간다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단언했다.
인텔이나 NXP 같은 반도체 기업은 피니스 지역에서 가장 성공적인 케이스로 손꼽힌다. 2010년부터 2017년까지 이들 기업의 근로자 생산성은 연간 약 2.1% 성장했다. 당연히 급여 수준도 대단했다. 정부 조사에 의하면 평균 일주일에 2,790달러 씩을 받았다.
그렇다고 일자리가 늘어난 것은 아니다. 2017년 현재 피닛스 지역 반도체 및 관련 업체 종사자는 1만6,600명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30년 전보다 무려 1만 개의 일자리가 줄어든 수치다.
여기에 대해 NXP 공장에서 주파수 출력 비즈니스를 담당하는 폴 하트 수석부사장은 “우리는 자동화 할 수 있는 부분을 자동화하고 있을 뿐”이라며 “일손이 늘어나기는 하지만 생산성을 증가하기 위해서는 인공지능과 자동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경찰관이 쓰는 바디캠과 테이저건 등을 만드는 액슨 역시 최대한 자동화에 힘쓰고 있다. 이 회사의 생산 담당 빌 댄저 부사장은 “약 10년전 80명의 인력이 달려들어 만들던 테이저건 카트릿지 생산량을 로봇은 4배나 더 많이 제작해 내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현상은 하이텍 산업 전반에 걸쳐 동일하게 벌어지고 있다. 에어크래프트 회사는 2010년에 4,028명이던 생산 분야 인력이 2017년에는 4,234명으로 200여 명 늘어났다. 컴퓨터 시스템스의 디자인 서비스 분야 인력은 같은 기간 7,000명에서 1만1,000명으로 증가했다.
그럼 이 기간 동안 저임금 인력시장은 어느 정도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을까. 피닉스 지역에서 가드닝, 청소원 같은 건물관리 분야에는 2017년 현재 3만5,000명이 종사하고 있다.
이밖에도 헬스케어와 소셜서비스 분야에서 25만4,000명, 레스토랑 등 요식업계에 13만6,000명이 종사하고 있는데 이들의 평균 급여는 일주일에 450달러 미만이다.
이곳 기업 중에서 직원 일인당 생산성이 21만달러에서 3,000만달러에 이르는 상위 기업 58개 회사가 고용한 인력은 2017년 16만2,000명으로 2010년보다 겨우 1만4,000명이 증가했다. 이와 비교해 일인당 생산성이 낮은 업종의 하위 58개 업체가 고용한 직원은 같은 기간에 10배가 증가해 67만3,000명에 달했다.
저임금 일자리만 크게 늘어나고 정작 고임금 직장은 소폭 증가하는데 그친 것이다. 당연히 소득 양극화 현상의 골이 깊어진 셈이다. 이런 경향은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헬스케어, 숙박업, 요식업, 건물관리, 사회복지 등 저임금 직종에서 일자리가 증가하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자동화에 밀려 일자리를 잃는 저임금 근로자들에게는 직업 훈련 등 재교육 혜택도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첨단기술로 인한 디지털 혁명을 과거 산업혁명의 변화 시기와 비교해 낙관론을 펴는 주장도 있다. MIT대학교와 우트레히트대학교가 공동으로 실시한 최근 연구에 따르면 지난 40년 동안 생산을 늘리기 위해 신기술을 도입한 업종은 예외없이 일자리가 축소됐다. 생산성 증가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업종에서만 일자리가 줄지 않았다.
이 보고서는 이렇게 결론을 정리했다. “문제는 일자리 양이 아니다. 중간이나 또는 낮은 수준의 기술 능력을 갖춘 근로자가 얼마나 양질의 일자리를 가질 수 있는가의 문제다.”
인간 없이 이뤄지는 경제를 꿈꾸는 실리콘 밸리의 드림은 이뤄지기 힘들 것이다. 어처피 로봇이나 인공지능이 인간의 모든 일을 대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열악한 환경과 저임금 속에서 허덕이며 일하는 경제라면 이것도 더 나을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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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원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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