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사한 ‘유적’
나무가 겨우내 읽을거리를 구하고 있다 바람을 읽고 지나가는 행인을 읽는다 우듬지를 통과한 문장은 시베리아 고기압처럼 차갑다 허기진 문장들 물관이 봄까지 읽는다 읽을 것이 없다면 온종일 기다릴 것이 없다 “절벽에서 축구를 한다”는 가까운 나라의 비아냥거림도 또박 또박 받아 적으며 겨울나기를 한다 새들의 연애를 읽는 동안 배꼽 아래서 뜨거운 피가 돈다 뿌리에 힘이 들어간다 바람이 한 겨울에 써 놓은 것들 3월까지 틈틈이 찾아 읽는다 상심 할 틈이 없다 봄이 되면 읽었던 문장에서 첫 싹이 돋을 것이다
얼어붙은 황량한 풍경 속 헐벗은 나무들이 겨울의 생을 읽고 있다. 행인의 가슴 속의 이야기를 읽고 뉴스도 읽고 전단지도 읽고 새들의 연애사도 읽는다. 걱정, 근심, 사랑, 기쁨, 추위, 배고픔 모두를 읽고 받아 적는다. 얼어붙은 생의 물관 그 내부를 엑스레이처럼 기록하는 나무. 그는 또박또박 적어두지만 발설하지 않는다. 봄이 올 때까지 혼자만 읽고 간직한다. 성실하고 건강한 겨울나무다. 근면하고 뿌리 깊은 겨울사람들이다. 상심할 틈이 없다. 동지를 지났으니 이제 햇살은 차츰 길어지리라. 한 해를 사느라 수고하신 겨울 속의 그대들이여, 봄이 오기까지 더욱 강건하기를!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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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영(19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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