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하진 ‘무제’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누구도 그립지 않은 날
혼자 쌀을 안치고 국 덮히는 저녁이면
인간의 끼니가 얼마나 눈물겨운지 알게 됩니다
멀리 서툰 뜀박질을 연습하던 바람다발
귀 기울이면 어느새 봉창 틈새로 기어들어와
밥물 끓어 넘치듯 안타까운 생각들을 툭툭 끊어놓고
책상 위 쓰다만 편지를 먼저 읽고 갑니다
서둘러 저녁상 물려보아도 매양 채우지 못하는
끝인사 두어줄 남은 글귀가 영 신통치 않은 채
이미 입동 지난 가을 저녁의 이내 자욱이 깔려
엉긴 실꾸리 풀듯 등불 풀어야 합니다
그래요. 이런 날에는 외투 걸치고 골목길 빠져 나와
마을 앞자락 넓게 펼쳐진 빈들에 나가지 않으렵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누구도 그립지 않은 날
웅크린 집들의 추위처럼 흔들리는 제 가슴 속
아 이곳이 어딥니까, 바로 빈들 아닙니까
강연호 (1962- ) ‘빈들’
외로움 깊은 사람의 가슴은 빈들과 같다. 바람만 윙윙 저 혼자 우는 겨울 벌판과 같다. 살아가는 일의 쓸쓸함도 애틋함도 다 내어주고 허허로이 열려 있는 빈들과 같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누구도 그립지 않은 날, 마음의 손끝으로 그 빈들이 찾아온다. 홀로 있는 자의 끼니처럼 애처롭고 귀중한 것이 또 있을까. 무엇을 찾아 나설 일 없겠다. 끝내지 못한 편지 옆에서 밥을 지으며 익어가는 빙설의 소리에 귀 기울여 가만 흘러갈 뿐. 겨울이 깊고 있다. 모든 쓸쓸함 속에는 사랑의 기억이 있다. 아니 사랑이 있다. 겨울 빈들에도.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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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호 (19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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