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은실 ‘어머니’
재빠른 아이들은 모두 집으로 들어갔다,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빨리-와서-손-닦아-아가-저녁이-다-식고 있잖아-아빠가- 올 때까지-기다려
느린 아이들만 풀밭에 남아있다, 반딧불 사이를 헤매면서,
입으로 아, 작고 보드라운 소리를 내면서, 빛나고 사라지고 또 빛나는
그들의 느린 엄마는 깜빡인다, 어스름 속에 창백하니, 그들이
순한 허공을 나르는 것을, 두 팔을 크게 펴고, 원형을 그리며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저 애들이 내 아이들이지,
그들의 저녁 밥상은 어디에 있는가? 저 아이들의 아빠는 어디로 갔는가?
느리거나 빠르거나 하다는 것은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다만, 멈추어 서면 보이는 게 있다. 우리의 눈과, 귀와, 살결 속으로 스며드는 느낌, 보드랍고 취약하며 아름답고 끈질긴 감각의 세상이다. 빠른 사람들이 떠나가고 남은 풀밭, 느린 사람들만 남은 그 풀밭에 반딧불이 빛난다. 언제부터 이 원초적인 시간이 슬픔이 되었을까. 먹을 것과 아빠가 없는 식탁에는 희망이, 빛이 있는 걸까? 없는 걸까? 자비의 손길은 있을 건가? 없을 건가? 있다. 아니 없다. 아니 있다. 깜빡 깜빡, 나의 생각도 빛났다 어두워졌다를 반복한다, 저무는 풀밭 저 건너편에서. 임혜신<시인>
<
Cecilia Wolo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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