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벤 실버만, 핀터레스트 공동창업자
▶ 구글 입사 후 여러 아이템 구상, 비엔지니어 출신이라는 한계로, 실제 구현하지 못한 채 퇴사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는 주인공 정봉(안재홍 분)이 헤어 드라이어와 핀셋을 이용해 편지 봉투에 붙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우표를 떼어내는 장면이 나온다. 대입 7수생인 그는 공부보다 우표와 레코드판을 모으는 데 관심이 많은 ‘수집광’이다. 드라마 속 정봉의 모습은 중장년층에게 학생 시절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1988년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직장인 김현욱(48)씨는 “그때는 우표를 수집하는 친구들이 참 많았다”고 회상했다. 최근에는 신발이나 모자, 피겨 등을 수집하는 20~30대 젊은이들이 많다. 시대마다 ‘아이템’만 달라질 뿐 인간의 수집 욕구는 본성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 같은 수집 욕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억만장자의 반열에 오른 젊은 기업가가 있다. 바로 이미지 기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핀터레스트(Pinterest)’의 공동 창업자 벤 실버만(Ben Silbermann·36)이다.
핀터레스트란 이름은 물건을 고정할 때 쓰는 핀(pin)과 관심사를 뜻하는 인터레스트(interest)의 합성어다. 회사 파티션이나 냉장고에 여행지 사진과 음식 조리법 메모를 핀으로 꽂아 두듯, 핀터레스트 사용자들은 인터넷상에서 관심 분야의 이미지를 핀으로 찍어 자기 계정에 끌어올 수 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가상의 수집 게시판을 만들고 이를 토대로 타인과 소통하는 공간인 셈이다.
2010년 서비스를 시작한 핀터레스트는 8년 만에 페이스북과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세계적인 SNS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현재 핀터레스트의 시장가치는 15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8월 기준 월간 활성 사용자(월 1회 이상 사용)는 2억5,000만명을 넘어섰고, 30억개의 가상 핀보드에는 1,750억개의 핀이 고정됐다. 이 같은 핀터레스트의‘광폭 성공’스토리는 이 회사의 공동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인 실버만이 없었다면 불가능 했을 것이다.
어린 시절 수집광 경험에서 창업 영감 실버만은 1982년 미국 아이오와주 드모 인(Des Moines)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모두 안과 의사였다. 실버만 역시 가문의 전통에 따라 의사가 되기 위해 예일대에 진학해 의예과 준비과정(Pre-med)을 밟았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그는 대학 시절 초고속 인터넷을 접하고 의사의 길을 접고 정치학과로 옮겼다고 한다. 2003년 대학 졸업 후엔 워싱턴DC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던 중 정보기술(IT) 전문 웹사이트 ‘테크크런치’의 기사를 자주 접하며 ‘실리콘밸리에서 뭔가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결국 그는 2006년 실리콘 밸리 IT 기업인 구글에 입사한다.
실버만은 구글 온라인 광고팀에서 일하며 여러 아이템을 구상했다. 하지만 엔지니어 출신이 아니다 보니 아이템을 실제로 구현할 길이 없었다. 2년 만에 구글을 그만둔 그는 대학 친구인 폴 시에라와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가 토트(Tote)라는 아이폰용 쇼핑 카탈로그 앱을 출시했다.
그러나 결과는 대실패. 애플 앱스토어에서 받아주지도 않았고, 소비자들의 호응도 없었다. 실버만은 유년시절 경험에서 두 번째 창업 아이템의 영감을 얻었다. 어린 시절 그는 곤충부터 우표까지 닥치는대로 모으는 수집광이었다. 실버만은 “수집은 그 사람에 대해 정말 많은 것을 얘기해준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인터넷상에선 그동안 모은 신발이나 옷 등을 보여주며 직관적으로 ‘내가 누구인지’드러낼 수 있는 공간은 없었다. 실버만은 “모든 사람이 트위터에서 재치 있게 말할 만큼 얘깃거리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페이스북에서 공유할 만한 재미있는 뉴스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며“그러나 다들 무언가 수집하고자 하는 것들은 있다”고 말했다. 건축학도 겸 디자인 전문가인 친구 에번 샤프가 새로 팀에 합류했다. 2010년 3월 핀터레스트가 개설됐다.
출발은 좋지 않았다. 사이트를 개설한지 9개월이 지나도 이용자 수는 1만명을 밑돌았다. 텍스트에 익숙한 이용자들은 이미지 기반의 핀터레스트를 매우 생소해했다. 실버만은 2012년 3월 음악 행사인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 에서 “200명의 친구에게 핀터레스트 링크를 보냈는데 그중 100명만 이메일을 열어본 것 같았다”며 “재앙에 가까울 정도로 적은 숫자였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캘리포니아의 구글 사람들과 고향 아이오와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메일을 계속 보냈다. 초기 이용자 5,000명과는 일일이 개인적으로 연락하며 서비스 이용과 관련된 모든 의견에 귀를 기울였다.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이용자들이 서서히 이미지 기반의 SNS 매력에 빠져들었다. 특히 패션, 음식 등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려는 여성들을 중심으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사이트 개설 후 2년도 지나지 않은 2012년 1월 순방문자 수가 1,170만명에 달했다. 주요 SNS 중 최단기간에 방문자 수가 1,000만명을 돌파한 것이다. 미국 경제방송 CNBC에 따르면 현재 핀터레스트의 시장가치는 130억~150억달러로 추산된다. 유니콘 기업(기업가치가 10억달러 이상인 스타트업)으로 도약한 셈이다.
핀터레스트의 성공 비결은?핀터레스트의 가장 큰 장점은 페이스북, 트위터 등 텍스트형 SNS와 달리, 이미지를 기반으로 해‘간편하다’는 것이다. 핀터레스트 사용자(pinner)들은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끌리는(interest) 이미지를 모아 자신의 방(핀보드)에 옮겨놓으면(pinning) 된다. 일상 생활에서 사진을 코르크 보드에 핀으로 꽂아 정리하는 것과 비슷하다. 타인이 올린 이미지도 리핀(Repin) 단추 하나만 누르면 자신의 핀보드로 옮길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사용자를 팔로하고, 페이스북의 ‘좋아요’처럼게시글에 하트를 클릭할 수 있다. 온라인 스크랩북을 토대로 타인과 소통하는 SNS인 셈이다.
비즈니스 모델도 탄탄하다. 핀터레스트는 가고 싶은 여행지, 요리하고 싶은 레시피, 사고 싶은 옷, 살고 싶은 집 등 이미지를 통해 미래에 대한 욕구를 표현하는 플랫폼이다. 핀터레스트에 이미지를 저장하는 행위는 곧 관련 제품을 사기 전 단계나 다름없는 셈이다. 실제 한 패션전문 웹사이트(Bottica.com)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핀터레스트를 통해 해당 사이트로 유입되는 고객은 평균 180달러를 소비한 반면 페이스북은 85달러에 불과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가 훨씬 더 많은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광고 효과는 핀터레스트가 더 높을 수 있다는것이다. 포브스는 지난 6월 “핀터레스트의 월간 활성사용자는 트위터(3억3,000만명)보다 적지만, 핀터레스트의 사용자들은 훨씬 더 적극적(engaged)”이라고 “이는 향후 핀터레스트의 기업가치와 수익 성장세를 이끌 수 있는 주요한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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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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