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저분한 눈덩이가 되어
난 다음 시대로 굴러 들어갈 거요
20세기에는 필요 없는 존재였지만
21세기에는 쓸모 있을지 모르잖아?
내 몸은 녹아서 웅덩이를 이루고
한파가 그 웅덩이에 몰아치겠지
이 멍청한 한파야
난 밀주가 아니란다.
박미하일 ‘노숙자의 노래’
한국계 러시아 작가 박미하일의 소설집 ‘ 사과가 있는 풍경’에 나오는 시다. 거리의 술주정뱅이가 10루블을 적선한 무명의 사진작가인 주인공, 드미트리에게 보답으로 들려주는 시다. 누군가 이 시대엔 니힐리스트가 없다고 한탄했다. 왜 없겠나. 다만 보이지 않을 뿐이다, 허무와 몸이 하나가 된 그들이 사는 곳은 버려진 곳이니까. 여기 그들 중 하나가 절망의 바닥을 친, 천진한 눈을 뻐끔히 뜨고 우리를 바라본다. 20세기에는 쓸모없으나 21세기엔 쓸 모 있을지 모른다며 웅덩이의 한 줌 물로 녹는 더러운 눈, 그는 몰아치는 혹독한 한파에게 자신은 밀주가 아니니 떠나라고 술 취한 손을 뿌리치고 있다. 허무와 심미와 풍자, 독자인 나는 쉽게 돌아서지 못한다.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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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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