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흥주 한미자유연맹 상임고문
언뜻 보기에는 정상회담의 화려함 속에서 나온 평양선언은 남북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어 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더 자세히 보면 실제로, 이 선언의 대부분은 이전의 남북협상에서 다루어 졌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내놓은 ‘평양공동선언’에 대해 미국에서 소위 진보 성향 언론들이 “기대 이하”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자유아시아방송(RFA)이 지난 19일 전했다. 이 방송에 따르면, 이 같은 반응을 보인 미 언론은 뉴욕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월 스트리트 저널이다.
뉴욕타임스는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개발에 필수적 시설인 서해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미국과 국제사회의 전문가들이 보는 앞에서 폐기한다는 약속은 관심을 끌지만, 북한의 핵무기 개발 중단 조치는 사실상 언급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9월 ‘평양공동선언’으로 한반도의 새 미래를 위한 평화의 레일이 깔린 듯하다. 처음으로 남북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실천방안이 논의됐고, 한반도에서 전쟁 시대를 끝내는 군사합의서가 채택됐고, 다방면 교류·협력 강화를 위한 토대가 구축됐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세 번째 회담으로 최고지도자 간 신뢰는 더욱 두터워졌다. 그런데 국가 간의 정상회담에서 태극기를 치워버린 것은 상호주의 원칙을 무시한 북한의 처사로 규탄 받아 마땅하다.
대한민국 국적자들은 왜 이런 처사를 보고도 함구했을까? 김정은 앞에서 한국이 무시당하는 이런 잘못을 감히 지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비핵화 의제와 관련, 이번 회담은 교착상태인 북미협상의 촉매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4.27 판문점 선언이나 6.12 싱가포르 미북 공동성명에도 ‘완전한 비핵화’가 명문화돼 있고, 여러 계기에 비핵화 뜻을 밝힌 게 간접적 방식으로 전달된 바는 있지만 김 위원장이 전 세계로 생중계되는 기자회견에서 핵 문제를 언급한 것은 비핵화 의지를 더욱 분명하게 전달하려는 뜻으로 보인다.
북측은 공동선언에서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 하에 우선 영구적으로 폐기하기로 했다’지만, 미국이 요구하는 핵 리스트 신고에 대한 내용은 담겨 있지 않다.
그러나 이번에 북한이 ‘유관국 전문가의 폐쇄 현장 참여’를 허용한 것은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는 쪽으로 선회한 것이다. 이제 비핵화 협상 재개의 공은 다시 미국으로 넘어왔다.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합의된 것은 주목할 대목이다. ‘올해 안’ 방문이 성사된다면 북한 지도자의 사상 첫 서울 방문이 실현되는 것이다. 분단 후 일대 사건이자, 남북관계는 또 한 단계 도약하는 획기적 전기가 될 것이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추진했지만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체제의 특수성 때문에 북한은 지도자의 신변을 곧 체제의 존립과도 직결되는 문제로 인식, 남한 내 여론이나 경호 등의 이유로 최고 지도자의 서울 방문을 꺼려왔다.
서해상 평화 수역과 시범적 공동어로 구역 설정에서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 시범 철수, 군사분계선 일대 각종 군사연습 중지, 군사분계선 상공 비행금지구역 설정까지, 현 단계에서 논의 가능한 여러 긴장 완화 조치들이 망라됐다.
남북이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의 일상화·제도화에 진입하기까지 남은 난제도 잘 극복해야 한다. 합의서에 담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 평화수역과 시범적 공동어로 구역 설정 문제만 하더라도 NLL을 해상 경계선으로 인정하지 않는 북측 입장으로 구체적 합의까지 진통이 예상된다. 상대방을 겨냥한 대규모 군사훈련 및 무력증강 등 민감한 문제를 협의하게 될 남북군사공동위의 협의 과정도 순탄하지만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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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흥주 한미자유연맹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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