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동현,‘Companion’
어딘가 아픈 얼굴들을 하고 시인들이 앉아있다
막 입원한 듯 막 퇴원한 듯 위중해도 보인다
암 투병 중인 여류시인 문병 갔다가 걸어서 연말 술자리에 갔더니
울긋불긋한 선거 현수막이 만장같이 나부끼더니
얼음장 아래 모인 한 됫박의 마른 물고기처럼
오직 시인들끼리, 시인들이 모여 있다
자리에 앉았는데도 멀리 떠난 얼굴을 한 아픔도 있고
어디든 너무 깊이 들어앉아 칼끝처럼 자기를 잊은 아픔도 있다
면도로 민 머리에 예쁜 수건을 쓴 마른 몸이 생각났다
젖과 자궁을 들어내고 젊은 죽음 냄샐 풍기는 몸들이 생각났다
아픈 그녀의 자리는 여기 없고
그녀는 이곳보다 더 춥고 어두운 들판을 걸어가고 있고, 시인들이
이름 부르면 끌려 나가야 할 인질들처럼 모여 있다
많은 것을 버렸는데도 아직 더 버릴 게 있다는 얼굴들이다
별로 얻은 게 없는데도 별로 얻을 게 없다는 표정들이다
시인들은 영원히 딴 곳을 보고 있다
무섭게 아프고 무섭게 태연하다
간혹 한눈 팔지 않는, 사촌 같은 아픔도 끼여 있는데
병을 흉내 내는 것이 더 큰 병임을 알기에
모르는 척 속은 듯 함께 앓아 넘기기도 한다.
나는, 여기 머물면서도 여기가 어딘지 모르는 사람들이 좋다
이상한 것에 정신없이 끌리는 사람들이 좋다
-후략
이영광 (1967- ) ‘시인들’
시인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그들은 아픈 사람들이고 아픔에서 눈을 돌리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병뿐 아니라 타인의 병, 그리고 시대의 병을 앓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멍하니 바라보는 곳은 아프고 슬픈 곳이다. 누군가 그랬다, 마지막 시인이 눈을 감을 때 세상은 끝난다고. 그것은 시인들이 세상에서 눈을 돌릴 때 세상에의 진정한 자각은 사라진다는 말이다. 이상한 것, 어두운 것에 정신없이 끌리는 것이 시인의 병이다. 구원과 치유의 능력은 대개 없다. 하지만 당신이 아플 때 같이 아파한다. 그들의 또 다른 이름은 아픈 당신, 그래서 누군가가 그들이 쓴 당신같은 시를 좋아한다.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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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 (19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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