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구,‘Reminiscence-clouds’
애인을 배낭 속에 넣고 아침이면
학교로 간다 멀리 강물을 내다보면 덜컹대는 전철 속에서도
행복하다 강의실 창가에 앉아 내가 졸고 있는 동안
애인은 배낭 속을 빠져나와 의자와 의자 사이를 교단 위를 교수님의
콧잔등 위를 뛰어 다닌다 아무도 그녀가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휴식 시간에 애인은 잔디밭에 나가
잔디를 뜯어먹으며 놀고 있다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이다 나는 자꾸 행복스러워진다 애인을
배낭 속에 넣고
방과 후에 술집에 모인다
피 같은 파전을 흘린다고 친구들은 울분에 차기도 하지만
내가 버리는 술과 찌꺼기는 배낭 속의 애인이 받아 먹는다 어허
취한다 애인이 탄성을 지른다 야
조용히 해 나는 발끝으로 애인의 젖꼭지를 찾아 누르며 속삭인다
울분한 아이들은 민족의 앞날을 염려하며 노래를 부르거나 민중과
지성을 꾹꾹 눌러 담아 마시거나
분노의 포도알이 되어 거리로 나선다
튀어나간다 애인을 배낭 속에 넣고 나는
-후략
박덕규(1958- ) ‘애인을 배낭 속에 넣고’
애인을 배낭 속에 넣을 수 없다. 하지만 마음속에 넣을 수는 있다. 배낭은 그러니까 마음이다. 마음속에 쏙 들어간 애인은 어디든지 함께 간다. 강의실에도 같이 가고 술집에도 같이 간다. 마음속에 있으니까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애인의 애인은 안다, 그녀가 잔디를 뜯어먹으며 혼자 놀기도 하고 술집 테이블 밑에서 아무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기도 한다는 것을.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며 모였다 흩어지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애인은 마냥 뛰어다니는 즐거움이다. 애인의 애인은 울분과 분노 속에서도 행복하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의 애인이다. 임혜신<시인>
<
박덕규(19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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