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사회 권력의 회랑에서 ‘존’이란 이름을 가진 남성을 찾는 것은 여성을 찾는 것만큼이나 쉽다.” 미국사회의 뿌리 깊은 성차별을 다룬 24일자 뉴욕타임스 기사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권력의 상층부에 올라 있는 여성의 비율이 ‘존’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성 권력자 비율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는 걸 꼬집은 것이다. 그러면서 경제전문지 포춘이 선정한 500대 기업의 여성 최고경영자들과, 존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성 경영자들 사진을 나란히 실었다. 여성은 23명, 존은 21명이었다.
미국사회의 ‘유리천장 지수’(Glass Ceiling Index)를 보다 폭넓게 살펴보고 업데이트하자는 게 이 기사의 취지다. ‘유리천장’은 1970년 월스트릿저널이 처음 사용한 개념으로,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 여성이 보이지 않는 차별 때문에 고위직에 오르지 못하는 현실을 꼬집는 용어다.
뉴욕타임스는 정치와 사법, 기업, 테크, 그리고 학계와 영화계 등 미국사회 각 분야의 권력층이 어떤 성별 분포를 보이고 있는지를 조사했다. 그리고 여성의 비율을 남성들의 특정 이름 비율과 비교하는 방식으로 실태를 설명했다.
가령 연방상원의 경우 공화당 여성의원 비율은 12%인데 비해 존이란 이름의 공화당 남성의원은 14%였다. 트럼프 행정부 각료들 중 여성은 12%이지만 대니얼, 데이빗, 제임스, 그리고 존 등 네 가지 이름의 남성각료 비율은 두 배가 넘는 25%였다. 법원과 언론, 그리고 대학 등에서도 리더십 포지션의 여성 비율은 남성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단 하나 예외였던 분야는 발행부수 상위 50개 잡지의 편집장들이었다. 잡지 편집장들 가운데 여성은 남성보다 많은 52%였다. 취재진은 인기잡지들 대부분이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것들이기 때문인 것 같다고 풀이했다.
분야별 파워 여성의 비율을 남성의 특정 이름 비율과 비교하는 방식은 2015년 회계법인인 언스트 & 영이 처음 시도한 것으로 뉴욕타임스는 이 비율을 매년 조사해 ‘유리천장 지수’로 보도하고 있다. 가장 글로벌한 조사로 평가받는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유리천장 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몇 년 연속 OECD 29개국 가운데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1~3위는 북유럽 국가들이 독차지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생각보다 순위가 높지 않아 2017년 20위에서 지난해 19위로 한 계단 올랐을 뿐이다.
여성들이 대학을 더 많이 졸업하고 전통적으로 남성 영역으로 여겨져 온 분야에 뛰어드는 여성들이 늘고 있음에도 미국사회 파워 포지션의 여성비율은 크게 낮다. 출산 등으로 경력이 단절되는 경우가 많은데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남성들이 같은 남성들을 후견하고 승진시키는 경향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또 리더에게 결단력과 야망을 요구하면서도 여성들이 그럴 경우에는 비판의 이유가 되는 ‘이중기준’도 분명 존재하고 있다.
이처럼 여성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여전히 뿌리 깊다. 그나마 긍정적인 것은 남성 이름 하나면 충분했던 비교가 이제는 두세 개의 이름이 필요할 정도로 분야별 여성 비율이 조금씩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권력의 회랑에 들어선 여성의 숫자가 모든 남성들의 이름을 합한 것과 같아지거나 더 많아지는 날 진정 유리천장이 소멸됐다고 선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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