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정연,‘Sound of leaves A’
사랑하는 사람을 달래 보내고
돌아서 돌계단을 오르는 스님 눈가에
설운 눈물방울 쓸쓸히 피는 것을
종탑 뒤에 몰래 숨어 보고야 말았습니다
아무도 없는 법당문 하나만 열어 놓고
기도하는 소리가 빗물에 우는 듯 들렸습니다
밀어내던 가슴은 못이 되어 오히려
제 가슴을 아프게 뚫는 것인지
목탁소리만 저 홀로 바닥을 뒹굴다
끊어질 듯 이어지곤 하였습니다
여자는 돌계단 밑 치자꽃 아래
한참을 앉았다 일어서더니
오늘따라 엷은 가랑비 듣는 소리와
짝을 찾는 쑥꾹새 울음소리 가득한 산길을
휘청이며 떠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멀어지는 여자의 젖은 어깨를 보며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인 줄 알 것 같았습니다
한번도 그 누구를 사랑한 적 없어서
한번도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야말로
가장 가난한 줄도 알 것 같았습니다
떠난 사람보다 더 섧게만 보이는 잿빛 등도
저물도록 독경소리 그치지 않는 산중도 그만 싫어
나는 괜시리 내가 버림받은 여자가 되어
버릴수록 더 깊어지는 산길에 하염없이 앉았습니다
박규리(1960- ) ‘치자꽃 전설’ 전문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슬픈 이야기 중에 하나입니다. 어디 스님과 스님을 사모한 여인의 이야기뿐이겠습니까. 누군가를 사랑했고 헤어져 본 이라면 눈물겹게 써내려간 이별의 모습 앞에 어찌 잠시 멈추지 않을 수 있겠는지요. 산사의 텅 빈 독경소리 속으로 흩어지는 이들의 인연은 정말 사라지는 걸까요? 아니면 깊어가는 걸까요? 사랑이란 깊을수록 아픈, 참으로 지독한 카르마란 말은 맞는 것도 같습니다. 어느 산길, 치자꽃 몇 송이 문득 당신의 눈길을 사로잡는다면, 그건 아마도 오래된 사랑의 기억 때문인지도 모르지요.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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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리(19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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