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다애,‘무제’
서울에서 방 한 칸의 위대함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려는 듯
월세 계약서를 앞에 놓고 주인은 거듭 다짐을 받는다
너무 시끄럽게 하면…… 딸꾹! 전기세는…… 딸꾹!
사나운 사냥개 어르고 달래듯
물 한 컵 단숨에 들이마시고 또 딸꾹!
숨을 한껏 빨아들인 주인의 입이 잠시 침묵하는 사이
불룩해진 아랫배가 딸꾹, 유세를 떤다
근엄한 입에서 딸꾹질이 한번 포효를 할 때마다
달동네 방 한 칸이 자꾸 산으로 올라간다
딸꾹질이 맹위를 떨칠수록 주인의 다짐도 조금씩 수위를 높여간다
서둘러 도장을 찍고 싶은 마음이
딸꾹질의 훈시에 맞춰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서울 쓰고 딸꾹! 서대문구 쓰고 딸꾹! 번지 쓰고 딸꾹!
사내가 주인인지 딸꾹질이 주인인지
계약서 한 장 작성하는 데 한 시간이 딸꾹,
여차하면 어렵게 찍은 도장마저 딸꾹질이 업어 갈 판인데 또 딸꾹,
딸꾹질의 폭력 앞에서 나만 점점 왜소해진다
아직 주지시키지 못한 다짐이라도 남아 있는 듯
딸꾹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주인은 천천히 계약서를 훑어보고 있다
보증금을 건네는 손이 나도 모르게 딸꾹질을 한다
고 영(1966- )‘딸꾹질의 사이학’
달동네 방 한 칸 계약서를 쓰면서 해라, 하지마라, 집주인이 유세를 부리는 장면이 코믹하다. 물론 딸국질 때문에 그런 것이지만 집주인 또한 큰 자본가도 아니라서 더 그렇다. 비슷비슷한 갑과 을. 다른듯하지만 별 다를 게 없다. 이 장면은 그저 층층시하 먹이 사슬의 나지막한 한 지점일 뿐이다. 사실 소시민들의 소자본적 유세는 횡포는 아니다. 그냥 웃기는 유세다. 저들의 뒤, 저들의 위가 문제다. 어딘가에서 흘러온 자본의 횡포가 딸국 딸국 달동네를 헤집고 있다. 조그만 갑이 딸꾹질을 하는 사이에 조그만 을은 시를 쓴다. 재미있는 대조이다.
임혜신<시인>
<
고 영(19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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