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안홍균의 ‘코리아 게이트’증언 16
▶ ■김상근의 ‘백설작전’ 증언
김상근 앞으로 보내온 박동선 명의의 수표. 20만 달러짜리 1장과 10만 달러짜리 2장 등 도합 40만 달러였다.
-현찰로 빚 릴레이 청산
김한조가 KCIA로부터 받은 돈의 사용처는 낱낱이 추적됐다. 미 국세청(IRS)의 보고에 의하면, 그는 30만 불을 수령한 74년 9월12일을 기점으로 빚쟁이에서 거액의 현금을 뿌려대는 사업가로 변모했다.
12일 이전만 해도 그의 화장품 회사는 계속 적자에 시달렸으며 자신이 가입한 생명보험으로부터 몇 차례나 돈을 빌렸다. 자신이 거래하는 여러 은행에서도 돈을 차용했다. 또 자동차 사와 백화점, 가구점에 내야 하는 월부금도 지체되고 있었다. 마지막에는 은행에서 다시 돈을 빌리려 했지만 거절당했다. 윤리위 검찰관들은 이 시점에 김이 파산 직전에 있었다고 추정했다.
그러나 다음 날인 9월13일부터 그의 주머니에서는 거액의 현금이 쏟아져 나왔다. 먼저 자신의 아들 2명이 다니던 랜돈(Landon) 사립학교에 밀려 있던 학비 3천160달러를 그의 부인이 100불짜리 현찰로 냈다. 캐딜락 자동차의 월부금(Monthly Payment) 밀린 것도 해결하고 워싱턴 DC에 있는 고급백화점인 가핑클(Garfincle)에도 900달러를 지급했다.
또 고급 가구점인 슬로안(W & J Sloan)에도 미지불금인 3천 달러를 현금으로 완납했다. 그의 빚 청산 릴레이는 이어진다. 로드 앤 테일러(Lord & Taylor)백화점과 서버반 은행(Suburban Trust Company)의 빚 4천 달러도 청산했다. 모두 현금으로 낸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유라시아 여행사의 빚 1,900달러도 해결했다. 이 여행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처남으로 워싱턴한인회장을 지낸 이성호 씨가 운영하던 회사였다. 이 여행사 직원들에 따르면 김한조는 과거 한국을 방문할 때 동경까지는 이코노미 석으로 끊고 일본서 서울까지는 1등석으로 예약해 타고 다녔다. 미국에서 한국까지 퍼스트 클래스를 탈 형편은 안 되지만 그의 과시욕은 그런 편법으로 나타났다. 절제해야 하는 욕망과 허세를 통제할 에피쿠로스의 ‘이성’이 그에게는 부족했던 모양이다.
-1만불 기부 후 명예박사학위
김한조는 여기저기 쌓인 빚만 갚은 게 아니었다. 그는 9월17일 타운 앤 컨트리 모터스에 1975년형 최신 캐딜락을 주문하고 500달러를 예치(Deposit) 하면서 전액을 현금으로 지불하겠다고 전했다. 같은 날 그는 집에서 타고 다니던 링컨 컨티넨탈을 1천 불을 들여 고치기도 했다.
9월19일에는 자신의 모교인 핀들리 대에 1만 달러를 현금으로 기부했다. 한 달 뒤인 10월17일 핀들리 대학 이사회는 동 대학에 한 학기만 재학한 김한조에게 명예 박사학위를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그 후 김의 요청에 따라 핀들리 대학은 신직수 중정 부장에게 명예 박사학위를 수여했다. 또 대학 인근의 한 교회에도 1천 달러를 헌금했다. 나라를 위해 쓰겠다고 30만 불을 받은 지 일주일만의 씀씀이는, 점심도 못 먹는 가난한 한국의 학생들을 입에 올리던 그의 ‘진심’을 역력히 보여주는 행태였다.
그로부터 9개월 후인 1976년 6월, 김한조는 다시 현금 30만 달러를 KCIA로부터 외교행낭으로 전달 받았다. 다시 거액이 수중에 들어오자 그는 호기를 부렸다.
6월13일, 앞서의 슬로안 가구사에서 현찰로 5천500불어치의 가구를 구입했다. 8월5일에는 다시 6천700불어치의 가구를 샀다. 현금을 물 쓰듯이 한 것이었다. 그해 여름에는 그의 가족들이 서울을 방문하면서 5천 달러어치의 항공권을 구입했다.
미 국세청과 법원, 하원 윤리위가 김한조의 돈 사용처를 추적한 바에 따르면 그는 자신이 받은 총 60만 달러 중에서 20만 달러를 사적으로 사용했다. 사용처가 밝혀지지 않은 나머지는 40만 달러였다. 이 잔액을 두고 청문회에서는 한판 대결이 벌어졌다. 검찰관들은 20만 달러를 사용하고 남은 40만 불의 행방을 추궁했다.
-중국 필적 감정사도 동원
김한조는 77년 11월17일을 필두로 11월23일, 12월9일, 이듬해 1월12일과 5월15일 등 모두 다섯 차례 하원 윤리위에 출두했다. 상원에서도 한 차례 진술했다.
그는 한국 중앙정보부로부터 돈을 받았느냐는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묵비권을 행사한 것이다.
앞서 김상근 참사관은 30만 달러를 줬다고 분명히 증언했지만 김한조는 이를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입을 닫은 것이다. 그에 따라 누구 말이 맞느냐는 진실 공방이 벌어졌지만 김한조가 30만 불을 받고 서명했다는 영수증의 진위만 밝혀지면 진실은 간단히 확인되는 것이었다.
그 서명이 진짜 김한조가 한 것인지를 증명할 책임은 미 정부에 있었다. 미 당국도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연방수사국(FBI)의 강원길 분석관이 절묘한 꾀를 냈다.
그는 김한조에게 종이 한 장을 주며 말했다. “내가 불러주는 걸 종이에 그대로 적어보세요.” 그는 “金東祚 大使가 漢江에 갔다.” 라고 불렀다. 金, 漢, 祚. 그의 이름이 그 안에 다 들어 있었다.
김한조는 처음에는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강이 주문한대로 썼다. 그러나 직후 자신의 필적을 남긴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강에게 준 종이를 뺏으려 했다. 그러나 그 종이는 벌써 강의 손에 들어간 후였다.
김한조의 필적을 획득한 FBI는 홍콩에 있는 이름난 중국인 필적 감정사를 초빙했다. 그에게 김의 필적과 영수증의 필적을 대조시켰다. “이것은 영수증의 서명 필적과 동일합니다.”
김한조의 침묵은 의미가 없어졌다.
-백설작전과 텔렉스
김한조와 한국 중앙정보부 사이의 ‘백설작전’과 관련된 교신을 위해 텔렉스가 설치됐다.
청문회에서 김상근은 메릴랜드의 김한조의 집에 설치된 텔렉스에 관해 증언했다. 텔렉스는 그의 집 차고 옆방에 설치돼 있었으며 수신은 787-28423, KCIA 본부 양두원 차장보의 번호였다. 이 텔렉스를 통해 지시와 보고가 이뤄졌다.
양은 김에게 미 의회의 대한(對韓) 정책을 보고할 것, 친한(親韓) 분위기 조성을 위해 미 언론사에 김한조의 이름으로 계속 투고 할 것, 미 의원들을 김의 집에 초대해 향응을 계속 베풀 것 등을 지시했다.
김은 양에게 미 의원들을 시켜 의회에서 한국에 유리한 발언을 하게 하고, 대한 군사원조 삭감을 막게 했다고 자랑했다. 또 의회 의사록을 뒤져 한국에 유리한 발언을 한 의원들의 말을 찾아내 마치 자기가 뒤에서 움직인 것처럼 보고했다.
중앙정보부와 직통되는 전신 내용이 미국 해외정보망의 촉각에 포착되는 사실을 상상해 보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텔렉스를 제공한 미국의 통신사인 RCA는 KCIA와 김한조 사이에 오간 통신 내용을 정확히 포착하고 있었다.
-반정부인사 동향 파악도
양두원의 ‘오더’는 미 의회에만 맞춰져 있는 건 아니었다. 한인사회, 특히 반(反)정부 인사들의 동향파악도 들어 있었다.
김상근의 증언에 의하면 양 차장보는 반정부 인사 명단을 김한조에게 전달했다. 중정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반정부 인사들은 언론인인 문명자, 정기용, 장성남, 이근팔, 이성호 씨 등 7-8명이었다. 모두 워싱턴에서 활동하는 한인들이다.
의회 로비 외에 반정부 인사들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당부했지만 김한조가 실제 그 역할을 수행했다는 증거는 없다.
-한국 기자들의 분노
김상근은 또 자신의 은행 계좌에 박동선이 발행한 수표가 입금된 사실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증언을 했다. 1975년 6월 말 양두원 차장보는 파우치 편으로 서신을 보냈다. 편지 안에는 수표 3장이 들어 있었다. 모두 박동선 명의의 40만 불로 김상근 앞으로 발행된 체크였다.
“동봉한 세 장의 수표를 당신의 은행에 예치했다가 유나이티드 영(United Young) 회사 최제영 사장에 전달하라. 보안에 조심하고 이 편지는 읽고 난 후 불태우라.”
양의 지시에 따라 김상근은 리그스 내셔널 뱅크에 있는 자신의 계좌에 입금시켰다가 한꺼번에 찾았다. 그리고 최제영에게 40만 불을 전달했다. 유나이티드 영 회사는 한국 중앙정보부에 기재를 납품하던 회사였다.
김상근은 최에게 보낸 40만 불이란 거액의 내역과 용도는 모른다고 증언했다. 박동선에게서 받아낸 그 돈은 아마 양이 중정 퇴직 후 개인적 용도로 사용하려고 지인인 미국의 최에게 몰래 보내놓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윤리위 조사팀 안에서 나돌았다.
그 후 미 당국이 조사에 착수하자 양두원은 최제영과 김상근에 어떻게 답변을 할 것인지를 지시했다. 그게 힘들면 사실대로 증언하라고 주문했다. 김상근은 나에게, 양이 공직생활을 명예롭게 마치길 원했다고 사적으로 말해주었다. 최제영에 전달된 40만 불 건은 그러나 미 의회와 관련된 내용이 없었기에 유야무야됐다.
김상근이 40만 달러 증언을 하고 있을 때 기자석에서 화가 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또 무슨 복마전 같은 소리야.” 조선일보 김대중 특파원이었다. 한국 기자들도 분노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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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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