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분위기나 맛보자며 일요일 자정 시청을 시작한 정현과 노박 조코비치 간의 호주오픈 16강전 때문에 결국 월요일 새벽 4시가 다 돼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3회전에서 세계 4위 알렉산더 즈베레프를 꺾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호주오픈에서 여섯 번이나 우승한 조코비치를 이길 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뚜껑이 열리자 경기는 예상 밖으로 흘러갔다. 정현이 조코비치의 서비스 게임을 잇달아 따내며 1세트를 4대0으로 앞서 나갔다.
그러나 관록은 무시할 수 없는 법. 아직 부상의 후유증이 남아 있다지만 세계 최고클래스 선수의 기량은 여전했다. 조코비치가 6대6으로 따라 붙으며 1세트 타이브레이크로 들어갔다. 결과는 정현의 승. 이후 경기는 정현이 앞서가면 조코비치가 따라 붙는 양상으로 엎치락뒤치락을 계속했다. 그러나 정현은 결정적 고비마다 조코비치의 추격을 따돌리는 플레이로 승리, 한국 테니스 선수로는 첫 메이저대회 8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21살 청년 정현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LA시간으로 수요일인 23일 밤 벌어진 8강전에서도 미국의 테니스 샌드그렌을 가볍게 물리치며 4강 진출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무명이었던 정현의 돌풍은 행운도 기적도 아니다. 오로지 자신의 땀과 실력으로 거머쥔 결과일 뿐이다.
정현의 경기를 보면서 확인한 그의 강점은 나이에 맞지 않는 침착함이었다. 조코비치가 턱밑까지 쫓아왔을 때도 별로 흔들리는 기색 없이 자신만의 플레이를 펼쳤다. ESPN 중계진은 연신 “침착함(composure)이 대단한 선수”라고 칭찬했다. 그가 이번 대회에서 타이브레이크까지 간 것은 다섯 차례. 그런데 모두 이겼다.
실력도 출중하다. 특히 정현의 강한 백핸드 스트로크는 일품이다. 조코비치와 페더러 같은 선수들의 전성기 때 플레이를 보는 것 같다.
하지만 정현의 계속적인 성장과 롱런을 기대케 만드는 것은 그의 뛰어난 신체조건이다. 테니스에서는 신체조건이 중요하다. 프로에서는 더욱 그렇다. 현 남자랭킹 10위까지 선수들의 평균 신장은 187.3cm이다. 갈수록 커지는 추세이다. 신소재들이 개발되면서 체중이 나가는 장신 선수들의 플레이는 더 위력적이 되고 있다.
그런데 정현은 한국선수로는 보기 드물게 키가 187cm이다. 여기에 운동으로 다져진 하체가 장난이 아니다. 키 큰 선수들은 하체가 조금 부실한 경향이 있는데 정현은 그렇지 않다. 23일 중계를 하던 카메라는 그의 하체를 클로즈업해 비춰줬다. 해설자는 “마치 NFL 러닝백을 보는 것 같다”며 감탄했다. 그의 파워풀하면서도 안정된 스트로크는 이런 신장과 근육에서 나오는 것이다.
정현의 선전은 한국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로 연결되고 있다. 코트 위에서의 뛰어난 플레이와 강한 멘탈, 그리고 경기 후 인터뷰 등을 통해 보여주는 친화력은 관중들과 시청자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그는 최고의 민간 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정현 돌풍’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메이저대회 4강 진출이 일상이 될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ESPN 코트 해설자는 “올 여름에도 그를 4강전에서 볼 수 있을지 모른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그가 말한 건 물론 윔블던대회다. 정현이 어떤 새로운 역사를 계속 써나가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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