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다애,‘무제’
며느리밥풀꽃!
이 작은 꽃을 보기 위해서도, 나는 앉는다.
바삐 걷거나, 키대로 서서 보면 잘 안 보이는 이 풀꽃들을 더듬어 가는 동안에도, 나는 몇 번인가 끼니를 맞고, 밥상을 차리고, 주걱을 든다.
나는, 이 보라 보라 웃고 있는 며느리밥풀꽃을 밥처럼 퍼담을 수가 없다.
이 꽃들의 연약한 실뿌리들은, 대대로 쌓여 결삭은 솔잎을 거름으로, 질기게도 땅을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갈맷빛 솔잎들이 걸러주는 반 그늘 속에서, 꽃빛 진한 며느리밥풀꽃이 꽃빛 진한 며느리밥풀꽃을 낳는다. 보라.
통설이 전설을 낳는다. 보라.
며느리배꼽이나 며느리밑씻개 같은 마디풀과의 꽃들이 낮은 땅에서 창궐하는 동안에도, 며느리밥풀꽃들은 작은 군락을 이루어 산등성이를 기어오른다. 보라.
이 긍지만 높은 작은 꽃의 밀실(蜜室)에 닿기 위하여, 벌은 제 무게로 허공을 파며, 더 자주 날개를 움직여야 한다.
보여도 보이지 않게, 스스로 크기와 색깔을 줄여온, 며느리밥풀꽃의 시간들이, 내 이마에 스치운다.
보라. 보라 보라 웃고 있는 며느리밥풀꽃!
이향지(1942- ) ‘며느리밥풀꽃’ 전문
며느리란 말이 들어간 꽃은 슬프다. 약자의 꽃이기 때문이다. 억울하게 죽어 꽃이 된 며느리밥풀꽃이 원한의 가시도 품지 않고 산등성이를 군락 져 피어오르고 있다. 그 꽃, 여자의 자화상같다. 요즘 세상에야 구박받는 며느리보다 외면당한 시어머니가 더 많을지 모르지만, 며느리란 말에는 아직도 아픔이 스며있다. 여자라는 말이 여전히 조금은 슬프게 들리듯이 말이다. 최근 들어 여성 백만장자의 탄생 비율이 지속적으로 남성보다 높아지고 있는 미국에서 페미니즘운동이 더욱 활발하다. 이 시 속에도 며느리꽃에서 애달픈 할미꽃까지 여자의 생이 보라 보라 깃발을 들고 있다.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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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지(19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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