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구,‘Reminiscence-clouds’
한파가 한차례 밀어닥칠 것이라는
이 겨울에
나는 서고 싶다 한 그루의 나무로
우람하여 듬직한 느티나무로는 아니고
키가 커서 남보다
한참은 올려다봐야 할 미루나무로도 아니고
삭풍에 눈보라가 쳐서 살이 터지고
뼈까지 하얗게 드러난 키 작은 나무쯤으로
그 나무 키는 작지만
단단하게 자란 도토리나무
밤나무골 사람들이 세워둔 파수병으로 서서
그 나무 몸집은 작지만
다부지게 생긴 상수리나무
감나무골 사람들이 내보낸 척후병으로 서서
싸리나무 옻나무 너도밤나무와 함께
마을 어귀 한구석이라도 지키고 싶다
밤에는 하늘가에
그믐달 같은 낫 하나 시퍼렇게 걸어놓고
한파와 맞서고 싶다
김남주(1946 -1994) ‘이 겨울에’
키 작은 나무들이 마을 앞에 옹기종기, 삭풍에 맞서있다. 그리고 거기 한 사람이 파수병처럼 서서 밤을 지킨다. 밤나무골, 감나무골 사람들은 좋겠다. 도토리나무, 싸리나무, 상수리나무처럼 조그마하지만 다부지고 의로운 사람이 척후병처럼 마을을 지키고 있으니까. 세월의 풍파를 그 누가 막아내 줄 수 있을까마는 이처럼 좋은 마음이 있어 세상은 훈훈하다. 꼭 나라를, 시대를, 마을을 구하는 큰 사람이 아니어도 좋다. 바른 마음, 맑은 마음 하나면 겨울밤은 어두워도 그다지 어둡지 않으리라. 임혜신<시인>
<
김남주(1946 -1994)>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