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동현,‘Companion’
추위가 칼날처럼 다가든 새벽
무심히 커튼을 젖히다 보면
유리창에 피어난, 아니 이런 황홀한 꿈을 보았나.
세상과 나 사이에 밤새 누가
이런 투명한 꽃을 피워 놓으셨을까.
들녘의 꽃들조차 제 빛깔을 감추고
씨앗 속에 깊이 숨죽이고 있을 때
이내 스러지는 니르바나의 꽃을
저 얇고 날카로운 유리창에 누가 새겨 놓았을까.
하긴 사람도 그렇지.
가장 가혹한 고통의 밤이 끝난 자리에
가장 눈부시고 부드러운 꿈이 일어서지.
새하얀 신부 앞에 붉고 푸른 색깔들 입 다물듯이
들녘의 꽃들 모두 제 향기를
씨앗 속에 깊이 감추고 있을 때
어둠이 스며드는 차가운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누가 저토록 슬픈 향기를 새기셨을까.
한 방울 물로 스러지는
불가해한 비애의 꽃송이들을.
문정희(1947- ) ‘성에꽃’
미 동남부 전역에 한파가 몰아칠 것이라 한다. 새해의 첫 주말이 예기치 않은 빙설에 갇혀버리려나 보다. 가혹한 추위의 긴 밤이 가고 햇살이 막 깨어나기 전에 만나는 성에꽃은 지난 고통의 잊혀진 기억 같다. 시인은 그 환한 망각을 니르바나의 꽃이라 부른다. 꽃으로 정지한 고통이란 정말 세속과 탈속의 사이에 그어진 얇고도 또렷한 선인지 모른다. 탈속 앞에 선 투명한 세속이라 할까. 한 치의 입김이면 이쪽도 저쪽도 아닌 곳으로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흰꽃으로 아침을 연다. 후후 성에꽃을 불어내고 탈속과 세속 사이의 새 시간을 맞는다. 니르바나, 매순간 피었다 지는 그 헛꽃 같은 진실의 꽃 사이로 걸어가는 당신, 가는 발걸음마다 축복이 있기를!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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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19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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