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샌프란시스코·시애틀 같은 기술도시와 인접 유리
▶ 쇼피파이·킥·훗수이트 등 기술기업들 이미 정착
캐나다 밴쿠버 ‘실리콘 코스트’의 부상
고급 인력으로 무장한 스타트업들과 포춘 500대 기업들이 빠른 속도로 밴쿠버 국경 인근에 사무실을 열고 있다. 캐나다 서남부의 브리티시 컬럼비아(BC) 주지사 크리스티 클라크는 예의상 미국이나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을 언급하진 않았다. 적어도 초반에는 그랬다. 하지만 ’무슬림 입국 금지‘와 H-1B 비자 제한 얘기가 나오자 어조가 조금 달라졌다. 그녀가 캐나다와 미국 기업들에게 던진 메시지는 분명했다: 미국이 세계적인 엔지니어와 프로그래머들을 내친다면 캐나다로선 이익이라는 것이었다.“다른 국가들이 안 쪽만 보고 있을 때, 캐나다는 좀 더 멀리 내다보자. 세계로 뻗어나가는 국가, 세계의 가교 역할을 하는 국가, 최고의 인재들을 환영하고 포용하는 국가가 되자.” 클라크가 BC 테크 서밋 회의장을 가득 매운 청중들에게 던진 화두였다. 이 행사는 올 3월 열린 밴쿠버 최대 규모의 기술업계 전문가 모임이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강경한 이민 정책을 펼치고 있다. 특히 H-1B 비자를 엄격히 제한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정책은 유능한 기술 인재를 유치하려는 다른 국가에겐 기회가 될 수 있다. 비자 제한이 없었다면 실리콘밸리나 다른 미국 지역에서 일했을 고급 인력을 포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인재들은 현재 중국과 멕시코, 프랑스, 인도 등에 접근하고 있다. 트럼프가 미국의 일자리를 빼앗아 가는 주범으로 비판했던 바로 그 국가들에 인재들을 내어주고 있는 꼴이다.
캐나다의 서부 주-특히 아름다운 경치로 유명한 대도시 밴쿠버는 샌프란시스코와 시애틀 같은 기술 도시와 인접해 있어 특히 유리하다. 미국의 고립주의 정책으로 얻는 반사 이익이 클 수 있다. 캐나다 정부와 기업들은 이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는 지리적 이점만 갖고 있는 게 아니다. 쇼피파이(온라인 쇼핑몰 소프트웨어 플랫폼 업체), 킥(모바일 메신저 서비스업체), 훗수이트(소셜 미디어 관리 업체) 같은 캐나다 토종 기술 대기업들이 이미 이곳에 자리잡고 있다. 그만큼 기술 및 벤처 사업 환경이 안정적이다.(워크플레이스와 협업을 하고 있는 슬랙은 2009년 밴쿠버에서 창업해 실리콘 밸리로 둥지를 옮겼다).
캐나다의 상대적으로 느슨한 이민정책과 기술업계는 오래 전부터 미국 대기업의 관심을 끌어왔다. 이 기업들은 외국 인재가 필요하지만, 역사적으로 예측 불가능한 미국 이민 정책 때문에 외국 인력을 유치하는 데 제약을 받고 있다.
페이스북과 보잉,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은 모두 밴쿠버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캐나다 임시 비자를 보유한 외국인 직원들이 주로 이 곳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들은 캘리포니아와 워싱턴 주의 동료들과 협업을 할 수도 있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가 미국에서 외면한 외국인 기술자들을 유치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0년간 이주에 고용된 숙련 기술 인력은 27% 증가했다. 이 중에는 숙련 노동자에 대한 자국 비자 제한 정책에 불만을 가진 미국 회사들도 있었다(워싱턴 주 레드먼드 남부에 본사를 두고 있던 마이크로소프트는 2007년부터 밴쿠버에 둥지를 틀어왔다).
주 정부는 미국 IT 기업들이 캐나다에 좀 더 쉽게 사무실을 낼 수 있도록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연방 정부와 협업을 통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신속한 비자 발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기업들에겐 재정적 인센티브도 주고 있다.
캐나다가 연방 정부 차원에서 법률 제정 등을 하고 있는 것도 참고할 만한 부분이다. 캐나다 정부는 지난 6월부터 ‘글로벌 기술 전략(Global Skills Strategy)’이라는 이민 개혁 정책을 시행했다. 숙련 기술 노동자들에게 좀 더 신속하게 비자를 발급해 주고-일부 주의 경우엔 2주 만에도 발급이 가능하다-캐나다에 사무실을 내는 절차를 안내해주는 일종의 컨시어지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그럼에도 BC 주는 지속적으로 차별화 전략을 모색 중이다. 클라크는 박사 학위를 받는 사람들에게 학위 수여 당일 캐나다 시민권을 보장해 주는 ‘박사학위 시민권’ 프로그램을 제안하기도 했다. BC 주는 올해 초 캐나다로 옮겨 온 가상현실(VR) 및 증강현실(AR) 기업들에게 주는 세액 공제 혜택도 확대했다.
BC주 정부에서 ‘기술혁신 및 시민 서비스부(Ministry of Technology, Innovation and Citizens’ Services)’ 장관을 지낸 앰릭 버크에 따르면, VR 및 AR 기업들에 추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데에는 나름대로 의도가 있다.
세계 금융의 중심지(뉴욕), 자동차 제조업의 중심지(디트로이트) 그리고 소프트웨어 공학의 중심지(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는 이미 존재하지만, VR과 AR의 글로벌 수도는 아직 없기 때문이다. 밴쿠버는 로스앤젤레스로부터 ‘영화제작의 중심지’라는 스포트라이트도 빼앗아왔다. 지금은 AR과 VR 분야에서 새로운 타이틀을 노리고 있을 수도 있다.
마이클 티펫은 “미국 이민 정책이 미국 기술 기업들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타국 기술 산업이 누리고 있는 반사이익을 판단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캐나다에 사무실을 여는 기술 기업들을 지원해주는 트루 노스의 공동 창립자다.
그는 “기업 이사회에서도 관련 논의를 하고 있다. 주주들은 회사의 수동적인 자세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기업은 전략적 고민을 한다. 만약 100명의 직원들로 구성된 사무실을 새로 연다면, 어디가 돼야 할 지 등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캐나다 정부는 실리콘밸리 외에 다른 곳을 찾는 기업들이 더 많아질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기업들은 불가피하게 인력을 줄이지 않아도 되는 곳을 탐색할 것이다.
클라크는 BC 테크 서밋에서 “캐나다의 이민제도가 완벽하다고 볼 순 없지만, 적어도 기술 기업이 인재를 영입할 여지는 충분히 많다”고 강조했다.
이는 기업들뿐만 아니라 캐나다 기술 산업 자체에도 유리할 수 있다. 지난 수 년간 자국 인재들이 미국 실리콘밸리로 향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던 캐나다 입장에선 더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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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포춘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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