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F, 미래에서 온 이야기] 리들리 스콧의 ‘에일리언’
▶ 외계 생명체 강렬하게 형상화, 유례없이 강인한 여전사 주인공
‘에일리언’이라는 단어는 ‘외계인’, ‘이방인’을 뜻하는 일반명사지만 이미 세계인에게는 리들리 스콧의 영화 ‘에이리언’에 등장하는 외계의 괴생물체의 이름으로 더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다. 이 생물은 엄연히 상상의 산물이건만 사람들은 현실에서 그 흔적을 찾으려 한다. 강렬한 창작물이 현실에 발을 뻗는 하나의 풍경이 아닌가 한다.
■‘스타워즈’가 바꾼 영화계의 지형
1977년 극장에서 ‘스타워즈’를 보고 나온 리들리 스콧은 비참해졌다. 스콧은 광고감독으로는 꽤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지만, 영화감독으로는 이제 겨우 첫 영화를 만들던 참인 햇병아리 신인이었다. 그는 일주일간 비참한 기분에 빠져 지냈다. 스콧은 다짐했다. “난 저런 걸 만들 거야.”
한편 작가 댄 오배넌은 1975년 프랭크 허버트의 SF 대하소설 ‘듄’의 각본 작업에 참여했다가 영화화 프로젝트가 취소되어 우울해하고 있었다. 오배넌의 다른 각본인 ‘스타 비스트’도 영화사를 표류하고 있었다. 누가 이런 기괴한 우주괴물 이야기를 만들어 줄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스타워즈’가 나오자 상황은 천지개벽으로 변했다.
하지만 우주괴물이 사람들을 죽이고 다닌다는 영화를 ‘쪽팔림을 무릅쓰고’ 만들려는 감독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제안을 받자마자 스콧은 생각했다. ‘아, 그래, 난 그런 걸 만들 거야.’ 그가 생각한 그림은 ‘죠스’처럼 ‘A급으로 만드는 B급 영화’였다.
■미지의 악몽을 형상화하다
스위스의 초현실주의 작가 한스 루돌프 기거는 어릴 때에도 해골을 갖고 놀고 지하실과 어둠을 좋아하는 특이한 소년이었다. 1970년대에 그는 스위스의 작은 갤러리에서 겨우 전시회나 하던 무명화가였고, 하도 기괴한 화풍 탓에 그의 작품을 전시한 갤러리 주인은 관객이 유리창에 뱉는 침을 닦는 것이 일과였다고 고백할 정도였다. 기거도 오배넌과 ‘듄’ 작업을 했지만 프로젝트가 좌초된 참이었다.
오배넌이 스콧에게 기거를 추천했고, 스콧은 기거의 76년 작품집 ‘네크로노미콘Ⅳ’를 보자마자 그 그림이 자신이 찾던 괴물임을 알아보았다. ‘네크로노미콘’은 작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가 창조한 크툴루 신화에 등장하는 가상의 성전(聖典)에서 따온 이름으로, 러브크래프트가 창조한 미지의 절대 악신을 모티브로 한 생물이었다. 스콧이 혀에 이빨을 달자고 제안했고, 기거는 눈을 없애자고 제안했다. ‘어디를 볼지 모르는 괴물이 훨씬 더 무서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눈도 없이 미끈하고 긴 괴물의 머리를 보자마자 배우 시고니 위버는 ‘거대한 남근이잖아’하고 생각했고 기거는 부정하지 않았다.
■인간 질서가 뒤엎어지는 충격
영화 속의 에일리언이 단순히 강하기만 했다면 그만한 충격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보다 강렬한 점은 절대적인 미지의 괴물 앞에서 인간끼리만 모여 살던 세상의 소소한 힘의 차이나 권력관계가 전부 의미를 잃는 것이다.
에일리언이 남성의 몸에 알을 낳고 유충이 그 몸 안에 기생했다가 배를 뚫고 태어나는 장면은 지금도 길이 회자되는 충격적인 순간이다. 2007년 미국 잡지 엠파이어는 영화사상 가장 중요한 순간 18위에 이 장면을 올렸다. 이 장면은 보통의 남성이 현실에서는 겪을 일 없는 임신과 출산, 더불어 기형적인 괴물을 낳고 비참하게 죽는다는 공포를 체험하게 했다. 미지의 괴물에 의해 성역할이 파멸적으로 해체되는 이 장면을 두고 당대 페미니스트들과 평론가들은 ‘여성주의 운동의 확장에 대한 보수주의자들의 공포’로 해석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마지막까지 남자로 생각되었던 인물, 리플리가 제작 3주 전에 여자로 변경되었다. 캐스팅 디렉터는 메릴 스트립을 생각했지만, 그녀는 약혼자 존 카제일을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참이라 반려되었고, 대신 단역을 몇 번 했을 뿐인 무명신인인 시고니 위버가 오디션을 통과해 채택되었다.
마찬가지로 원래 인간으로 설정된 각본을 그대로 이어받은 안드로이드 애쉬도 지금까지 아무도 본 적이 없었던, ‘인간과 구분되지 않는’ 로봇을 세상에 보여주었다. ‘스타워즈’까지만 해도 기계와 인간의 구분과 계급관계는 분명했다. 인간이라 믿었던 안드로이드의 머리에서 하얀 피가 흐르는 것을 보며 관객들은 경악했고, 동시에 닫혀 있던 하나의 상상의 문을 열었다.
■미래를 현실로 그려낸 이미지
후에 스콧은 미 항공우주국(NASA)과 함께 앤디 위어의 SF소설 ‘마션’으로 동명의 영화를 찍으면서, “나는 영화를 상상으로 찍지 않는다”고 했다. “이것은 ‘에이리언’ 같은 영화를 찍을 때조차도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내가 에일리언을 제대로 묘사하지 않았다면 그런 영화가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마션’은 어찌나 고증이 정확하고 풍경이 현실적인지, 아직 인류가 발을 딛지 않은 화성에서 벌어지는 가상의 이야기인데도 마치 실화를 소재로 한 다큐 재난영화처럼 보인다.
영화 ‘에이리언’을 찍을 당시에는 특수효과 기술이 미비했지만, 스콧은 “중요한 것은 관객이 ‘보는’ 것이 아니라 ‘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며, 괴물을 거의 보여주지 않는 것으로 오히려 그 현실감을 극대화했다. 스콧은 영화 속의 승무원들이 지금 여기서 사는 실제 인물처럼 보이기를 원했고, ‘우주의 트럭 운전사들’로 요약한 이미지로 묘사했다.
이들은 그때까지의 SF 주인공들과는 달리, 나이가 많고 지저분한 작업복을 입고 다녔고, 일상을 사는 평범한 직업인들처럼 보였다. 스콧은 이 방식을 ‘스타워즈’에서 배웠다고 술회했지만, 그의 영상은 루카스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었고, 이후의 SF 영화들이 현실성을 띠게 하는 데에 일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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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영 SF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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