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하르트 슈뢰더는 1944년 노르트 라인-베스트팔리아에서 독일군 장교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제2차 대전에 참전했다 슈뢰더가 6개월 됐을 때 루마니아에서 전사한다. 혼자 남은 어머니 에리카는 농장 노동자로 일하며 두 아이를 먹여 살렸고 슈뢰더도 어렸을 때부터 판매원이나 공사장 인부로 전전하다 야간 학교에서 공부해 대학 입학 자격을 따며 괴팅겐 법대에 진학해 변호사가 된다.
이렇게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낸 그가 사회주의에 빠져든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1963년 사민당에 입당한 그는 1978년에는 ‘청년 사회주의 동맹’의 의장이 된다. 청년 시절엔 적색 테러 조직인 바더 마인호프 갱단 창립자인 호르스트 말러의 변호를 맡아 그의 조기 석방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사민당에서 착실히 정치 경력을 쌓아가던 그는 1998년 총선에서 승리해 독일 총리가 된다. 그러나 그가 물려 받은 독일의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1990년 독일 통일에는 성공했지만 막대한 통일 비용에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복지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재정은 엉망이었고 고임금과 중과세 각종 규제로 발이 묶인 기업들은 고용과 투자를 늘리기보다는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느라 바빴다. 한 때 ‘대영제국’을 자처하다 식민지를 모두 잃고 중과세, 과복지에 저성장 고실업으로 ‘유럽의 병자’란 별명을 얻은 영국의 뒤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1999년의 ‘제3의 길’ 선언이다. 역시 젊었을 때 사회주의자였지만 그 정책 실패를 몸소 경험하고 대처의 시장 친화적 개혁 정책을 포용해 집권에 성공한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와 함께 발표한 이 선언은 감세와 노동 및 복지 개혁, 기업가 정신을 장려하는 것을 골자로 한 경제 부흥안이었다.
2003년 그가 실천에 옮긴 ‘어젠다 2010’은 ‘제3의 길’ 정신을 정책으로 반영한 것이다. 이에 대해 사민당의 전통적 지지 기반인 노조는 극렬히 반발했고 그 결과 슈뢰더는 2005년 선거에서 져 총리직을 기민당의 앙겔라 메르켈에 내줘야 했다.
그러나 메르켈은 사민당과 대연정을 수용하고 슈뢰더의 개혁 정책을 그대로 밀어부쳤다. 그 후 10여 년이 지난 지금 독일은 ‘유럽의 병자’에서 ‘유럽의 강자’로 탈바꿈 했고 6%의 낮은 실업률과 1.8%의 유럽 수준으로는 높은 경제 성장을 기록하며 유럽 경제를 선도하고 있다.
물론 독일이 이런 위치에 선 것은 전통적인 기술 강국의 면모에다 어려서부터 간판이 아니라 기술을 가르쳐 고등학교만 나와도 취직이 보장되는 사회 제도, 그리고 기업은 어려울 때 사람을 자르기보다는 근무 시간을 줄이고 노조도 무리하게 임금을 올려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지 않는 등 노사가 서로를 존중해주는 풍토가 조성돼 있기에 가능했지만 기본적으로 슈뢰더의 개혁 정책이 없었더라면 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지난 주말 열린 독일 총선에서 기민당이 승리함으로써 메르켈은 독일 통일을 이룩한 헬무트 콜과 같이 4선 총리의 위업을 이뤘다. 이렇게 된 것은 그의 뛰어난 지도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슈뢰더가 이뤄낸 개혁 덕에 독일 경제가 견고한 성장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 주 원인이라는데 별 이론이 없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슈뢰더 전총리는 “개혁은 정권을 잃을 각오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는 요즘 중국의 사드 보복에 정부의 고비용 중과세 정책으로 흔들리고 있다. 과연 한국의 지도자들에게 슈뢰더의 말을 경청하고 이를 실천에 옮길 용기와 지혜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