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한 정파의 상징적 인물이다. 그래서 출신 정당이 다른 대통령들은 서로 껄끄러울 수 있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정책적으로 동의하지 못하는 경우 전직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국가적으로 위기가 발생하거나 국민적 화합이 필요한 상황이 닥치면 미국의 대통령들은 전·현직 가릴 것 없이 기꺼이 손을 잡고 화합 행보를 보여준다. 잇달아 미국을 덮친 허리케인으로 수많은 이재민들이 고통에 신음하자 전직 대통령 5명이 손을 잡고 모금 운동에 나선 것도 이런 행보의 하나이다.
전직 대통령 5명은 허리케인 구호를 위해 ‘원 아메리카 어필’(One America Appeal)이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전직 대통령들이 피해자 돕기에 나서달라고 호소하는 내용의 TV 광고가 지난 주말 집중적으로 전파를 탔다. 정치적 견해는 뒤로 하고 대의를 위해 기꺼이 카메라 앞에 선 모습은 훈훈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을 겨냥한 테러가 발생했을 때도 전·현직 대통령들은 하나 된 모습을 보여줬다.
국가적 위기 외에 대통령들이 두드러진 화합 행보를 보이는 또 하나의 경우는 전직 대통령들의 기념도서관 헌정식이다. 퇴임한 대통령의 정치적 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세워지는 기념관을 헌정하는 행사에는 전직들은 물론 현직 대통령까지 참석, 아낌없는 축하와 함께 진심어린 덕담을 건넨다.
2004년 클린턴 기념관 개관식에는 그에게 패했던 아버지 부시 대통령과 현직이었던 아들 부시 대통령이 참석, 클린턴의 정치적 업적을 칭송했다. 기념식에 참석한 카터 전 대통령은 이 자리를 빌어서 자신이 “전쟁을 선택한 무책임한 지도자”라고 비난했던 부시의 재선을 축하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서도 분위기가 훈훈해진 것은 물론이다.
2013년 텍사스 달라스에서 열린 부시 대통령 기념관 헌정식에도 현직이었던 오바마와 전직 대통령들이 참석했다. 당시 언론들은 “논란을 접고 밝은 표정으로 만난 전·현직 대통령들의 회동 자체가 미국의 통합과 화합을 상징하는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이던 지난 2009년 연방의회에는 고인이 된 레이건의 동상에 세워졌다. 이 행사를 맞아 오바마 대통령은 당시 88세이던 레이건의 부인 낸시 여사를 백악관으로 초청했다. 오바마는 이 자리에서 “레이건 대통령의 낙관적 시각은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힘겨운 시기에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바마는 레이건과 정치적 성향과 철학이 근본적으로 달랐지만 전임 대통령이 남긴 정치적 유산에 존경심을 표한 것이다.
미국의 전직과 현직 대통령이 밝은 표정으로 자리를 함께 하고 필요할 경우 한 목소리를 내는 모습은 정말 부럽다. 전직 대통령들의 비극을 끊임없이 목격해온 국가의 국민들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전직 대통령들은 국가의 부채가 아니라 자산이 되어야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것은 대통령들의 개인적 자질 이전에 정치문화의 문제이기 때문에 쉽지 않다. 한국의 전·현직 대통령들이 밝은 표정으로 자리를 같이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으려나 기대해 보지만 돌아가는 형국을 보니 그런 날은 너무 까마득해 보인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