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최대 스포츠 이벤트는 단연 올림픽이다. 200개가 넘는 국가의 선수단이 참가해 자국의 명예를 놓고 기량을 겨루는 올림픽의 규모를 따라갈 이벤트는 없다. 하지만 인기와 열기 면에서 본다면 월드컵이 올림픽을 훨씬 능가한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경기를 벌이는 축구는 그런 단순함을 바탕으로 전 세계 최고 인기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손이 아니라 발과 머리로만 공을 다뤄야 하고 몸이 격렬하게 부딪히는 축구는 원초적인 성격이 강한 스포츠이다. 국가 대항전인 월드컵은 애국심까지 더해진다. 이런 특성은 월드컵을 전 국민적 열광과 몰입으로 몰아넣는다. 2002년 월드컵의 응원 열기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이렇듯 팬들을 미치게 하는 월드컵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술의 신’ 이름을 따 현대판 ‘디오니소스 축제’라고 명명한 문화평론가도 있다.
한국이 내년 러시아에서 열리는 21회 월드컵 본선행 열차에 가까스로 올랐다. 우즈베키스탄과의 예선 마지막 경기서 비겼지만 이란이 시리아와 무승부를 기록해주는 바람에 턱걸이로 본선 진출 티켓을 손에 쥐었다. 쑥스러운 진출 확정이지만 아무튼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9회 연속 월드컵 진출이라는 역사를 썼다. 한인 축구팬들에게 월드컵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가슴 뛰는 축제이지만 한국이 진출함으로써 한층 더 설레는 이벤트가 됐다.
러시아 월드컵은 내년 6월14일 주최국 러시아의 경기를 시작으로 7월15일까지 한 달 간 펼쳐진다. 참가국은 32개국. 엄밀하게 말해 월드컵이 진검승부의 장이 되려면 상위 32개국이 참가해야 하는 게 맞다. 그러나 국제축구연맹(FIFA)은 다양성을 위해 대륙별로 적절히 티켓을 배정하고 있다. 소수인종에게 기회를 주기 위한 미국의 ‘어퍼머티브 액션’의 취지와 유사하다.
아시아에 배정된 티켓은 4.5장. 이번 대회 진출을 이미 확정지은 아시아 4개국 가운데 FIFA 랭킹 32위 이내 국가는 30위인 이란이 유일하다. 한국은 43위, 일본은 45위, 사우디아라비아는 53위다. FIFA의 배려로 월드컵에 많이 나가기는 하지만 아시아 국가들의 성적은 형편없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아시아 국가들은 3무9패라는 초라한 성적을 거뒀다. 이 때문에 아시아 배정 티켓을 줄여야 한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러시아 월드컵 전 경기는 폭스 계열사들을 통해 중계된다. 하지만 미국 내 축구팬들에게는 고민거리가 있다. 러시아와 미국 간의 시차 때문에 경기시청이 그리 용이하지 않다는 점이다. 러시아 월드컵 예선 경기들은 대부분 미 서부시간으로 새벽 4시와 아침 7시, 오전 10시에 벌어진다. 이른 새벽 일어나 한 경기를 본다 해도 아침 7시는 출근시간과 겹쳐 어중간하다. 오전 10시는 직장에 있을 시간이다.
경기 시청은 축구팬들 각자가 알아서 해결할 일이고, 한국이 월드컵 무대에서 수모나 당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월드컵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남은 기간 부족한 전술을 완성하고 뼈를 깎는 자세로 준비한다면 예상 밖의 임팩트 있는 결과를 거둘 수도 있을지 모른다.
많은 한국 축구팬들은 아직까지도 2002년 월드컵 성적이 안겨준 착시현상에 사로잡혀 있다. 하지만 냉정해야 한다. 이번 예선에서 드러난 수준이 한국 축구, 좀 더 나아가서는 아시아 축구의 현 주소이다. 그러니 너무 높은 기대는 갖지 않는 게 좋다. 아시아에 배당된 4.5장 티켓에 대한 비판만 잠재워도 성공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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