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쓸쓸함엔 기원이 없다
너의 얼굴을 만지면 손에 하나 가득 가을이 만져지다 부서진다
쉽게 부서지는 사랑을 생이라고 부를 수 없어
나는 사랑보다 먼저 생보다 먼저 쓸쓸해진다
적막한, 적막해서
아득한 시간을 밟고 가는 너의 가녀린 그림자를 본다
네 그림자 속에는 어두워져가는 내 저녁의 생각이 담겨있다
영원하지 않은 것들을 나는 끝내 사랑할 수가 없어
네 생각 속으로 함박눈이 내릴 때
나는 생의 안쪽에서 하염없이 그것을 바라만 볼 뿐
네 생각 속에서 어두워져가는 내 저녁의 생각 속에는 사랑이 없다
그리하여 나의 쓸쓸함엔 아무런 기원이 없다
기원도 없이 쓸쓸하다
기원이 없어 쓸쓸하다
박정대 (1965-) ‘되돌릴 수 없는 것들’ 전문
가을이 오고 있다. 쓸쓸한 가을이 오고 있다. 이 쓸쓸함은 기원도 없고 이유도 없다. 그저 문득, 가슴 깊은 곳에 찬바람이 불고 잎들이 떨어진다. 생각의 적막을 따라 안으로 안으로만 깊어가는 노래가 있을 뿐이다, 저무는 숲의 가슴처럼, 그 숲에 몰아치는 함박눈처럼 풍요한 서러움의 안쪽으로 쓸쓸함이 깊어갈 뿐이다. 사랑이나 이별을 말하기조차 너무 쓸쓸한 익명의 시간이다. 이제 서성여도 좋다. 횡설수설 기원 없는 노래를 불러도 좋다. 모든 밖의 것들이 부셔져 내리는 가을 깊은 날에는.임혜신<시인>
<
박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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