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하는가? 적어도 지금까지의 민주주의 역사를 토대로 말하자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민주주의 정치체제와 제도를 가장 먼저 발전시켰던 서구 선진국들은 모두 기독교 문화권에 속해 있었다. 많은 종교학자들과 정치학자들은 이것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들은 자유, 평등, 인권 등의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와 ‘모든 사람이 하느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기독교의 가르침 사이에 친화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기독교의 신앙공동체이자 생활공동체인 교회를 ‘수평적이고 자발적인 시민결사’의 한 형태로 이해할 수 있다면,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남의 ‘사회적 자본’ 개념을 통해 교회와 민주주의의 관계를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신도들은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다른 신도들과 활발히 상호작용하고 협력하면서, 사회 구성원들 간의 ‘일반화된 신뢰’를 구축하는 데 기여하게 된다.
이렇게 일반화된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구축된 사회에서는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시민들 간의 협업이 보다 수월하게 이뤄진다. 퍼트남의 가설에 따르면, 사회 구성원들 간의 일반화된 신뢰는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신뢰로까지 확산된다. 구성원들 간의 신뢰 수준이 높은 사회에서는 정치과정의 투명성이나 정치참여의 효과에 대한 신뢰의 수준도 높기 마련이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가 융성한 곳에서 민주주의의 제도와 가치가 더 공고하게 자리 잡을 것이라고 가설을 세워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론을 떠나서, 요즘의 미국 사회에서도 여전히 기독교가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지 질문을 던져본다면 답변하기가 곤란해진다. 과거의 기독교도들은 자유와 평등, 인권이라는 민주주의의 핵심가치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확산시키려는 편에 서 있었다. 그러나 요즘 미국의 기독교도들은 그 반대 편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우려가 된다. 이들은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성소수자의 행복추구권에 반대하는 것이 지금까지 민주주의가 수호해온 가치들을 방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듯이 행동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 대선이 그러했다. 유세 기간 내내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 사회의 인종적 소수집단에 대한 노골적 차별과 배제를 지지하는 발언을 반복해왔다. 그러나50% 이상의 개신교도들과 가톨릭 교도들이 트럼프를 지지했다. 백인 복음주의자들의 경우에는 무려 81%에 달하는 사람들이 그를 지지했다. 여기에는 낙태합법화와 동성결혼 허용이라는 시대적 추세를 뒤집을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그 중 무엇도 약속한 적이 없었다.
보수적인 성향의 미국 기독교도들이 민주주의의 반대편과 손을 잡으려 한다는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얼마 전 샬러츠빌에서 백인우월주의자 세력이 힘을 과시한 바 있다. 백인우월주의자들의 모임인 KKK단은 주로 미국의 중남부와 동남부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 지역은 복음주의 교회들이 위세를 떨치고 있는 지역과 상당 부분이 겹친다. 백인우월주의자들은 성경을 인용하면서 혐오 발언을 정당화한다.
우리는 기독교가 ‘민주주의의 주춧돌’에서 ‘민주주의의 장애물’로 전환되는 순간을 목격하고 있는 것일까. 미주 한인회의 기독교인들은 어떤 응답을 마련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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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준 / 콜로라도대 정치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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