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북한에서 풀려난 미국 청년 오토 웜비어(22)가 19일 사망했다. 청년의 부모는 18개월 전만 해도 건장하고 활달하던 아들이 어느 날 식물인간이 되어 나타나더니, 1주일도 채 못돼 죽고만 비현실적 현실 앞에서 슬픔을 가누지 못하는 모습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아들에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북한이라는 나라는 왜 이렇게 잔인한지 치솟는 분노를 누르기 어려울 것이다. 부모로서 뭘 잘못해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뭘 어떻게 했으면 아들이 죽지 않을 수 있었을지 회한과 자책은 두고두고 계속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참혹한 고통, 참척이다. 자식을 잃은 고통이다.
미국의 30대 대통령, 캘빈 쿨리지는 유난히 ‘죽음’과 인연이 깊다. 삶의 중간 중간에 죽음이 끼어들곤 했다. 첫 번째는 어머니의 죽음이었다. 12살 어린나이에 어머니가 폐렴으로 사망했다. “소년에게 닥칠 수 있는 가장 비통한 일이 내게 닥쳤다. 이후 삶은 절대로 이전 같지 않았다.”고 그는 자서전에 썼다.
그리고는 5년 후, 어머니의 빈자리를 같이 메우며 의지하던 누이가 맹장염으로 사망했다. 쿨리지는 슬픔을 꾹꾹 내리누르며 청년기를 보냈다.
그 다음은 1923년 8월 워런 하딩 대통령의 죽음이었다. 이번 죽음은 그에게 행운을 가져다주었다. 대통령이 사망하면서 당시 부통령이던 쿨리지는 대통령 직을 승계했다. 그는 갑자기 찾아든 백악관 생활을 만끽했다. 자신의 성공을 한껏 즐기며 웃음이 얼굴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다음해인 1924년 재선에도 그는 무난히 당선되었다.
그 즈음 또 다른 죽음이 찾아왔다. 16살짜리 둘째아들의 죽음이었다. 대통령의 두 아들과 백악관 의무관들이 테니스를 장시간 쳤는데 둘째아들이 양말을 신지 않았었다. 운동화에 쓸려 발가락에 물집이 생겼는데, 갑자기 고열이 나면서 아이는 5일 만에 사망했다. 물집을 통해 세균이 침입하고 혈액이 감염됨으로써 나타나는 전신성 염증반응 증후군, 바로 패혈증이었다. 페니실린도 항생제도 없던 시절, 아버지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죽음도, 누이의 죽음도 아들 잃은 슬픔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이후 쿨리지의 집권 2기는 실패로 기록된다. 중증 우울증이 그를 사로잡았다. “아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백악관의 힘과 영예도 함께 떠났다”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는 취임 초기 자신이 백악관 생활을 너무 좋아한 데 대해 내내 자책했다. “백악관을 차지한 것이 이런 대가를 치르게 할 줄은 몰랐다”며 고통스러워했다고 한다.
유태인 후손인 웜비어 가족은 전형적 중상층의 삶을 살아온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는 성공한 사업가이고 아들은 공부 잘하고 운동 잘해서 모두의 부러움을 사는 학생이었다. 버지니아 대학 3학년에 이미 졸업에 필요한 학점을 다 따면서도 런던 경상대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다녀왔고, 유태인 후손으로 이스라엘에도 다녀왔다. 홍콩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참석하러 가던 길에 중국을 거쳐 북한관광에 나선 것이 생사를 가르는 길이 되고 말았다.
부모 잃은 슬픔이 하늘 무너지는 충격, 천붕(天崩)이라면 자식 잃은 슬픔은 창자가 가닥가닥 끊어지는 고통, 단장지애(斷腸之哀)이다. 보다 직접적이고 동물적인 아픔이다. 살아가면서 참척만 피해도 그만하면 평안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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