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TV가 첫 선을 보인 것은 2008년 9월이다. 화질도 과거 아날로그 TV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데다 기존 채널 하나를 10개까지 쪼갤 수 있어 채널 수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 후 1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 테크놀로지의 발달과 함께 TV 화질은 고해상도(HD)로, 또 같은 HD라도 720p에서 1080p으로, 거기서 다시 4K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일반 소비자들로 볼 때는 좋은 안테나만 하나 달아놓으면 고화질로 수십개 채널을 거저 볼 수 있게 된 셈이다.

이런 TV 혁명의 가장 큰 수혜자의 하나는 LA에 사는 한인들일 것이다. KBS, MBC, SBS 등 한국 주요 지상파 방송은 물론이고 연합뉴스, 아리랑, 종편에 이르기까지 10개 가까운 다양한 방송을 무료로 즐길 수 있다. TV만 켜 놓으면 한국 뉴스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거기다 아직은 한국에 비해 느리지만 미국 인터넷 속도도 수년 전과 비교해 엄청나게 빨라졌다. 고속 인터넷과 함께 넷플릭스나 아마존, 훌루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면 거의 대부분의 영화를 고화질로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이같은 미디어 환경 변화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케이블과 위성방송 회사들이다. 차터 커뮤니케이션은 올 1/4분기 10만 명의 고객이 케이블을 끊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최근 주가가 7% 폭락했다. AT&T 유버스는 23만 명, 프런티어는 8만 명의 고객을 잃었다.

올 1/4분기 케이블과 작별한 미국 가정은 76만2,000가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작년 같은 기간 14만1,000가구의 5배에 달하는 숫자다. 이 분야 전문가인 크레이크 모핏은 “원래 1/4분기는 케이블 TV 수요가 높은 시즌인데도 이 모양”이라며 “올 1/4분기는 케이블 역사상 최악”이라고 말했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신청해도 한 달에 20~30달러는 들지만 자기가 보고 싶은 프로만 골라 볼 수 있고 무엇보다 100~200달러에 달하는 케이블 요금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거기다 스마트 폰을 통한 오디오 비디오 감상과 SNS 활동에 시간을 많이 보내기 때문에 TV를 볼 시간 자체가 별로 없다.

미국 가정 일곱 집중 하나가 이미 케이블을 끊었고 9%는 아예 이를 신청한 적이 없다. 미국 가정의 ¼이 케이블 없이 산다는 이야기인데 지금도 문제지만 앞으로가 더 심각하다. CNN 시청자의 평균 연령은 59세고 폭스는 이보다 더 심해 68세다. 이들이 가고 나면 케이블 시장이 더 위축되리라는 것은 예측하기 어렵지 않다.

반면 젊은 층이 선호하는 스트리밍 서비스는 이미 130개가 넘고 좋아하는 TV프로를 녹화했다 광고 없이 보여주는 DVR도 클라우드 형태로 끝없이 진화하고 있다. 지금까지 케이블의 강점이었던 스포츠 실황 중계는 슬링과 후보(fubo TV)를 이용하면 훨씬 싸게 즐길 수 있다. 스트리밍 서비스의 종류도 만화 전문인 ‘크런치롤’부터 영국 프로 위주의 ‘에이콘’, 다큐 전문인 ‘큐리오시티 스트림’ 등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한 때 한국 비디오 렌트업소는 가장 수익성 높은 업종의 하나였고 미국 비디오 대여업체인 블럭버스터는 미 전역에 수천개의 체인을 가진 대기업이었다. 그러나 이제 블럭버스터는 파산해 사라지고 한국 비디오 가게도 좀처럼 찾아 볼수 없다. 한 때 미국 TV 시장을 지배하던 케이블 회사들도 이들과 비슷한 길을 걸어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