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인간이 만든다. 그 안에 사는 개인은 나름대로 머리를 짜내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세상을 움직이려 하지만 그 뜻이 이뤄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가 박정희를 쏴 죽인 일도 그 중 하나다. 한때 박정희의 충복이었던 김재규가 왜 박정희를 사살했는지에 대해서는 차지철과의 충성 경쟁에서 밀려 그랬다는 설, 유신 체제의 심장을 쏴 민주주의를 회복하려 했다는 설 등등이 있으나 그 진실은 김재규 그만 알 것이다.
어쨌든 그 후 전개된 한국역사는 김재규가 의도한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김재규는 박정희 살해범으로 체포돼 사형에 처해졌고 전두환은 피비린내 나는 12.12와 5.18 폭거를 통해 권력을 장악했다. 김재규가 없었더라면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의 폭정에 분노한 일부 한국 젊은이들이 주체 사상에 빠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박근혜가 정치판에 뛰어든 것은 김재규에 의해 살해된 아버지 박정희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2012년 51.6%로 1987년 민주 헌법 개정 이후 최초로 과반수 득표이자 최대 표수로 대통령에 당선되자 소원은 이뤄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재임기간 중 어이없게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말려 들어 한국 역사상 최초로 탄핵당해 쫓겨난 대통령이 되고 지금은 구치소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박정희의 명예 회복이 아니라 박정희의 유산을 땅에 묻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약 박근혜가 최순실과 연을 끊고 가만히만 있었어도 올 대선에서 새누리당의 후보는 반기문이 되었을 것이고 그렇게 됐더라면 문재인, 안철수와의 3파전 속에서 무난히 당선됐을 가능성이 높다. 그랬더라면 퇴임해 안락한 노후를 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9일 열린 한국 대선에서 예상대로 문재인 후보가 당선됐다. 문재인 지지자들은 지금 축배를 들고 있을지 모르지만 해방 이후 한국 정치사는 그에게 놓인 앞길이 험난하기 그지없을 것을 시사하고 있다. 지난 70년간 한국 대통령 직에 앉은 11명 중 행복하게 퇴임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 위중하고 미국과 중국, 일본과 북한 누구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한국 경제가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수출은 대통령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 경기가 좌우한다. 거기다 집권 여당은 국회의석이 과반수에 한참 미달하고 법안 하나 통과시키려면 국회 선진화법 때문에 재적 의원 3/5인 180명의 동의가 필요하다.
여기에 문재인의 이번 승리는 본인의 능력이 아니라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 덕분이다. 문재인은 사실 노무현의 비서실장이라는 것 이외에 뚜렷한 업적이 없는 사람이다. 거기에다 지난 번 총선에서 “호남이 저를 버리면 정계 은퇴하겠다” “대통령이 되면 미국보다 북한에 먼저 가겠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겠다”는 등 무책임한 발언을 쏟아냈다. 그 후 “여건이 마련되면” “북한이 핵개발을 중단할 경우”라는 단서를 붙여 수정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신중함이 모자란 모습을 보여줬다.
이런 숱한 장애물과 정치적 미숙함을 딛고 그가 성공적으로 대통령 직을 마칠 수 있을 지 걱정이다. 숙적 카르타고를 무너뜨린 로마의 스키피오 장군은 카르타고가 불타는 모습을 보며 “언젠가는 로마도 저렇게 망하겠지”라며 눈물을 흘렸다 한다. 전임자들의 말로를 반면교사로 삼아 더 이상 비극의 주인공이 되지 않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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