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산업은 최근까지 ‘투자가의 무덤’으로 불렸다. 지난 100년간 항공사에 투자했다 재미 본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늘을 날며 여행을 즐기고 품위있게 돈도 벌면 좋지 않을까 하는 투자가의 기대와는 달리 미국 항공사들은 과잉 경쟁과 높은 인건비, 비싼 기름값 등으로 투자 이익을 내기보다는 망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지금까지 파산한 항공사만 거의 100개에 달한다. 투자의 귀재로 ‘오마하의 신탁’(Oracle of Omaha)으로 불리는 워런 버핏은 2013년 항공 산업을 “투자가들의 죽음의 덫”이라고 불렀다.
더 이상은 아닌가 보다. 버핏은 작년 말 아메리칸, 유나이티드, 델타, 사우스웨스트 등 미 주요 항공사에 투자한 사실을 공개했다. 총 투자액이 80억 달러에 달한다. 전설적인 투자가가 항공 산업에 대한 생각을 바꿨다는 것은 항공 산업의 환경이 근본적으로 달라졌음을 말해준다.
우선 항공사 경비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원유 값이 수년 전 배럴 당 100달러에서 50달러 선으로 폭락했다. 거기다 보잉 787과 에어버스 380 같은 최신 대형 항공기가 등장하면서 기름을 상대적으로 덜 쓰고 더 많은 승객을 실어나르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난 수년간 항공업계의 인수 합병이 계속되면서 경쟁이 줄어들었다. 이 때문에 고객들은 항공사들이 수하물에 추가 요금을 매기고 이코노미 좌석 공간을 줄여도 울며 겨자 먹기로 비행기를 탈 수밖에 없었다. 현실적으로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불과 10여년 전 미국에는 여러 대형 항공사가 있었다. 그러나 2008년 대불황과 함께 대다수 항공사가 파산하고 살아남기 위해 합병이 유행하면서 수가 대폭 감소했다. 델타는 노스웨스트와, 유나이티드는 콘티넨탈과, 아메리칸은 US에어웨이와, 사우스웨스트는 에어 트랜 에어웨이와 합쳤다.
그 결과 경쟁은 줄고 영업 효율은 높아졌으며 경영 상태는 호전됐다. 버핏이 투자한 네 항공사는 현재 세계 최대 규모로 최대의 영업 이익을 내고 있으며 당분간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역시 투자의 귀재는 뭔가 다르다.
지난 주 유나이티드 항공이 오버부킹을 이유로 데이빗 다오라는 베트남계 미국인 승객을 강제로 끌어내리는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모든 미국인이 분노로 떨었다. 유나이티드 주가는 한 때 6% 폭락하며 투자가들의 우려를 반영하는듯 했다.
그러나 마구 떨어질 것 같던 주가는 폭락 당일 후반에 들며 하락분을 거의 회복했고 지난 주 거의 변동이 없는 주당 70달러 수준에서 장을 마감했다. 이는 지난 여름과 비교하면 2배가 오른 상태다.
전문가들은 이번에 강제로 끌려 나간 승객은 100만 달러 이상 거액의 배상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작년 한 해 동안 유나이티드는 360억 달러의 매출을 올려 23억 달러의 순익을 냈다. 그 정도 돈을 물어준들 손익 계산서에 아무런 표도 나지 않는다.
한 동안 국민들은 분노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잊힐 것이고 갈 곳 없는 승객들은 다시 이 비행기를 탈 것이다. 이것이 냉정한 현실이고 투자가들의 분석이다. 유나이티드가 돈을 낸 승객을 강제로 끌어내릴 정도의 오만한 태도를 갖게 된 것은 이런 객관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반독점 규제법을 엄격히 적용해 대형 항공사를 해체하고 외국 항공사에 미국내 항공 영업을 허용하는 등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한 고객을 짐짝 취급하는 미 항공사들의 태도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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