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닿은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길이 적막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닫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쪽으로 뻗는구나.
그러나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 끼어서
먼 산이 너무 가깝구나.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는가.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것을
끝까지 사절하다가
죽음은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문의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고은(1933- ) ‘문의(文義) 마을에 가서‘ 전문
눈 덮인 혹한의 겨울 마을은 삶과 죽음의 중간에 놓여있다. 아마도 생명이 죽음을 받아들이고 나서 더 두려울 것이 없는 그런 경지가 이 냉혹한 풍경일지 모른다. 삶이면서 죽음인 겨울. 그곳에 웅크린 절망의 근엄함. 누군가에겐 다시 봄이 오고, 또 누군가에겐 이것이 마지막 장소이리라. 팔짱을 낀 여행객은 지나온 삶을 더듬어 저 쓸쓸한 겨울 풍경으로 죽음과 화해하고 있는 것일까. 결코 이길 수 없는 죽음과의 마지막 한 수를 두는, 적막한 풍경이다.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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