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습니다.”
서울 중앙지검 현관 앞 포토라인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 말이다. 나라는 ‘촛불’과 ‘태극기’로 갈라지고, 분열의 중심에 선 전직 대통령은 피의자 신분으로 21일 검찰에 출두했다.
사상 유례가 없는 대통령 파면 후 찬반의 대립이 극한 상황에서 박 전 대통령이 국민 모두를 아우르는 어떤 메시지를 발표하지 않을까 하던 기대는 무산되었다. 옅은 미소를 띤 모습으로 조용하게 두 마디 한 후 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이로써 한국에서는 전두환, 노태우, 노무현에 이어 4번째 전직 대통령이 포토라인에 섰다. 김영삼, 김대중, 이명박 전 대통령은 포토라인을 면했지만 대신 아들들과 형이 그 자리에 섰다. 지난 30여년 ‘포토라인’과 무관했던 대통령이 없으니 참 어두운 역사였다.
참 불우한 국민들이다.
포토라인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1992년 초원복집 사건과 만난다. 1992년 14대 대선을 일주일 앞둔 12월11일 김영삼 후보 지원 논의가 복국집에서 있었다. 김대중, 정주영 후보에게 표가 넘어가게 해서는 안 된다며 “우리가 남이가, 이번에 안 되면 영도다리에 빠져죽자”고 지역감정을 선동한 발언으로 유명한 모임이다.
그때 모임을 이끈 인물이 바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당시는 전 법무장관이었다. 복집 방안에서 끼리끼리 주고받은 발언들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도청 때문. 정주영 후보의 통일국민당 당원들이 이를 도청해 언론에 공개했다.
선거가 끝나자 정 당시 국민당 대표는 즉각 선거법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되고, 김 전 법무장관 역시 불법 선거운동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해 12월 말 정 대표가 서초동 서울지검에 출두했을 때였다. 정 대표의 사진을 찍으려고 기자들이 몸싸움을 하며 우르르 몰려들자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 와중에 어떤 카메라에 머리를 부딪쳐서 정 대표는 이마에서 피가 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그리고 얼마 후 김 전 장관이 출두할 때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검찰 관계자들이 가이드라인을 설치하는 등 사전 준비를 한 덕분에 혼란 없이 취재가 이루어졌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합의된 것이 포토라인 설치의 필요성이었다.
초기에는 불협화음도 있었다.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소환되던 때만 해도 포토라인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 경호관들이 기자들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사진 촬영을 방해했다. 그래서 욕하는 것까지 모조리 기자들이 사진과 영상으로 담자 이들은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전직 대통령 못지않은 포토라인의 단골은 재벌 총수들. 90년대 까지만 해도 수행원들과 기자들 사이에 실랑이가 빈번했다. 수행원들이 총수를 빼돌리거나 취재를 방해하는 일들이 벌어지곤 했다.
세월이 흘러 ‘포토라인’이 하나의 관행으로 굳어지면서 태도들이 바뀌었다. 많이 세련되었다. 대부분 포토라인 앞에 서는 모습을 사전에 연습한다고 한다. 겁먹은 듯 보여도 거만해 보여도 안 되니 표정은 담담하게, 걸음걸이며 행동은 의연하게. 그렇게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채 박 전 대통령 역시 검찰청사로 들어갔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