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이 언제부터 생겨났는지는 분명치 않다. 중국 고전인 ‘박물지’에 따르면 전설의 황제 요와 순이 자식 단주와 상균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게 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이것을 역사적 사실로 볼 수는 없다.

그나저나 요가 황제의 자리를 친자식을 놔두고 어진 농부 순에게 물려준 것이나 순 역시 친자식 대신 치수에 능한 우에게 넘긴 것을 보면 바둑으로 어리석은 자식을 현명하게 만드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유사 이래 똑같은 판은 한 판도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변화무쌍한 게임인 바둑은 아무리 컴퓨터가 발달해도 인간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 통념이었다. 그러나 이 통념은 작년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4대 1로 물리침으로써 깨졌다. 구글 ‘딥 마인드’ 프로그램으로 제작된 알파고는 수많은 경우의 수를 연산해 낸 후 어느 것이 자기에게 유리한 지를 판단하는가 하면 과거의 실수를 반성하고 이를 개선해나가는 자기 학습 능력이 있는 컴퓨터다.

알파고 대국 직전까지도 인간의 우세를 점치던 전문가들은 이제 인간이 컴퓨터를 이기기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컴퓨터의 학습 능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일취월장하는 데 인간은 거기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 두뇌 우월성의 상징이던 바둑에서조차 컴퓨터에 밀린다면 인간이 우위를 지킬 수 있는 분야는 별로 없다고 봐야 한다.

작년 12월 아마존은 캐시어가 없는 마켓 ‘아마존 고’의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 스마트 폰에 ‘아마존 고’ 앱을 설치하고 구좌를 연 후 마켓에 가 물건을 바구니에 넣어가지고 오면 결제는 앱이 처리해주고 영수증은 이메일로 온다. 매장에 있는 동안 센서와 인공 지능이 구입 물건의 계산을 해준다. 줄을 설 필요도, 카드를 긁을 필요도 없다.

아직은 아마존 본사가 있는 시애틀에서 아마존 직원만을 상대로 하는 시험 매장이지만 이것이 미 전국으로 확대되는 것은 시간 문제로 봐야 한다. 그렇게 될 경우 나날이 올라가는 최저 임금과 건강 보험료를 물며 사람을 채용하고 있는 기존 매장은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며 수십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문제는 사라지는 일자리가 매장 캐시어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15년 동안 인공 지능과 로봇을 통한 자동화로 미국내 일자리의 47%에 달하는 8,000만개가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고 보고 있다(영국 은행 보고서). 자동화로 소멸될 직종은 캐시어나 운전사, 웨이터 등 단순 직뿐만 아니라 회계사, 변호사, 기자, 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까지 포함하고 있다. 지금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인 일자리를 앗아갔다고 비난하는 북미 자유무역 협정으로 인한 손실이 70만 개 정도인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닥쳐올 변화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18세기 후반 일어난 산업혁명 때도 가내 수공업 종사자를 포함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졌지만 그보다 더 많은 공장 일자리가 생겨났다며 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사람도 있지만 이는 100년 이상 긴 시간 동안 이뤄졌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새 직종도 탄생했다.

그러나 향후 10여년 사이 일어날 로봇 혁명은 시간도 짧은데다 로봇이 로봇을 만드는 세상에서 인간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지금이라도 트럼프를 포함한 정치권은 애꿎은 외국인 탓만하지 말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논의를 하루속히 시작해야 할 때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