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1973년 10월 20일 엘리엇 리처드슨 법무장관과 윌리엄 러클스하우스 부장관의 사표를 받았다. 이들이 아치볼드 칵스 특별 검사를 해임하라는 닉슨의 명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칵스는 1972년 7월 워터게이트 빌딩에서 일어난 주거 침입 사건에 백악관이 관련돼 있음을 밝혀내기 위해 백악관에서 있은 대화 내용을 녹음한 테이프 제출을 요구했다. 그러자 닉슨은 토요일인 10월 20일 리처드슨 법무장관을 불러 칵스 해임을 지시하지만 리처드슨은 이를 거부하고 사임했다. 닉슨은 다시 러클스하우스 부장관을 불러 같은 지시를 내리지만 그도 거부하고 사임했다. 닉슨은 결국 로버트 보크 부부장관을 불러 칵스 해임을 지시하며 보크는 이에 따른다.
칵스는 해임됐지만 그 후임으로 리온 자워스키가 특별 검사로 임명되며 연방 대법원은 닉슨에게 백악관 테이프 제출을 명령한다. 연방 의회에서의 탄핵이 확실해 지자 닉슨은 1974년 8월 9일 사임한다.
닉슨 탄핵이 가시권에 들어온 것은 소위 ‘토요일 밤의 학살’로 불리는 칵스 해임 지시와 법무장관과 부장관 사임이 있으면서부터다. 이때부터 닉슨 탄핵 여론이 반대 여론을 앞서기 시작했다.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부당한 해임 지시는 내릴 수 없으며 이를 따를 바에야 사임하고 말겠다는 법무장관과 부장관의 용기가 놀랍다. 한국에 이런 장관 두세명만 있었더라도 최순실 게이트 같은 정치적 참사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43년 전 워싱턴에서 벌어진 일이 요즘 다시 벌어지려 하고 있다. 시리아 난민과 이라크 등 회교권 7개국 국민들의 입국을 금지한 도널드 트럼프의 행정 명령이 법에 어긋난다며 그 집행을 거부한 법무장관 직무대행 샐리 예이츠 부장관을 트럼프는 30일 전격 해임했다. ‘월요일 밤의 학살’로 불리는 이번 사건은 워터게이트와는 내용이 다르지만 고위 관리가 대통령의 명령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그 부당성을 지적했다는 점에서는 같다.
“국적에 따라 비자 발급을 차별할 수 없다”는 1965년 ‘이민 국적법’을 위반한 트럼프의 행정 명령은 사법부에 의해서도 곳곳에서 제동이 걸리고 있다. 뉴욕의 연방 지법 판사인 앤 도널리는 미민권연맹이 제출한 소원을 받아들여 연방 정부가 미국에 도착한 시리아 난민과 이라크 등 입국이 금지된 7개국 비자 취득자의 추방을 유예하는 긴급 명령을 내렸다. 도널리 판사는 이들이 송환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게될 가능성이 있다며 이런 결정을 내렸다.
도널리 판결 직후 버지니아 알렉산드리아와 시애틀, 보스턴의 연방 판사들도 일제히 같은 결정을 내렸다. 보스턴의 앨리슨 버러즈 판사는 트럼프 행정 명령만으로 보스턴 공항에 내린 누구도 억류하는 것을 금지했다. 27일 트럼프가 행정 명령을 내린 지 하루만에 민권 단체가 이를 법원에 제소하고 판사가 이를 일부 무효화하는 판결을 내렸다는 것이 놀랍다. 미국은 대통령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미국의 창업자들이 닉슨과 트럼프 같은 인간이 대통령이 될 것에 대비해 권력을 행정과 입법, 사법 세 갈래로 나눠놓았기 때문이다. ‘견제와 균형’을 통해 누구도 함부로 권력을 남용할 수 없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다.
그러나 제도가 있더라도 이를 지키려는 개개인의 노력과 용기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트럼프 같은 인간을 대통령으로 뽑기는 했지만 샐리 예이츠와 앤 도널리 같은 사람들이 있는 미국은 아직 희망이 있는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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